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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깊은뉴스]사랑이란 탈을 쓴 범죄…아직도 ‘불구경’
2018-01-03 19:54 사회

"사랑했기 때문이다' 데이트 폭력을 위장하는 명분인데요.

폭행과 감금을 넘어 살인까지 자행되는데도, 사법당국과 현행법은 가볍게 여기는 게 현실입니다.

그 끔찍한 실태를, 최주현 기자가 '더깊은 뉴스'로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사랑해서 때리고
사랑해서 죽이고
사랑해서 숨겨야하는 상처
<사랑의 '탈' : 데이트 폭력>

[제보자]
"아주 집을 엉망 진창으로 어떻게 여자를 그렇게 끌고 다녀요, X 패듯이 폭행하고 막…"

두달 전 새벽,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서 일어난 데이트 폭력.

현장은 참혹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당시 경찰 신고자]
"도어락은 부서져 있고, 여자 맞는 소리가 들려가지고, 여자 얼굴 쪽이 거의 함몰되서, 피범벅돼 있어서…"

하지만 출동한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 사고로 처리했습니다.

남성은 폭행 사실을 부인했고, 여성은 술에 취해 있었다는 이유였습니다.

[해당 지구대 관계자]
"맞은게 아니라, 여자가 비틀거리다 계단에 부딫쳐서 찢어졌던 사건으로 알고 있는데, 폭행은 아니야…"

하지만 당시 상황이 담긴 CCTV가 공개되면서, 남성은 폭행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데이트 폭력.

매년 큰 폭으로 늘면서, 2016년 경찰에 접수된 것만 8천 건이 넘었습니다.

감금과 폭행은 물론, 살인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주현 기자]
"데이트 폭력의 무서움, 살인 사건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는데요.

최근 10년간 발생한 살인 사건 10건 중 한건은 연인 사이에서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상당수 피해자들은 신고를 주저한 채 마음고생만 하고 있습니다.

심하게 집착하는 남자 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했던 26살 강모 씨.

[강모 씨 / 데이트 폭력 피해자]
"옷은 뭐 입었는지 등을 다 찍어서 보내야 하고, 쓰레기 버리러 가는 것도 다 찍어서 보내야…"

급기야, 남자 친구는 스토커로 돌변했고, 강씨는 1년 이상 시달렸습니다.

[강모 씨 / 데이트 폭력 피해자]
"회사 직장 상사한테 연락해서 '헤어졌는데 만나게 부탁드린다'고. 직접 찾아와가지고 계속 초인종 누르고 문 두드리고…"

회사까지 그만둬야 했지만, 신고는 커녕 하소연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강모 씨 / 데이트 폭력 피해자]
"정말 무서웠던 것 같아요. 나중에 보복 당할 것 같기도 하고. 소문이 돌 거 아니에요."

강씨처럼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면 현행법상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불가능합니다.

[김재련 / 변호사]
"반의사불벌죄 규정 자체가 오히려 피해자에게는 피의자를 용서해줘야 한다는 의무를 지우는 것 같아요.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행위 경중에 따라 처벌하는 것으로 바뀌었으면…"

열세살 많은 남자 친구와의 만남이 악몽으로 변한 20살 정모 씨.

[정모 씨 / 데이트 폭력 피해자]
"현금이나 카드를 방안에 둔채로 맨몸으로 쫓겨 나서 문 앞에 서 있는 거에요. 길거리에서도 발로 차고, 뺨은 계속 부어 있어요, 많이 맞아서"

몇번이나 헤어지려 했지만, 남자 친구는 오히려 결혼 각서까지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모 씨 / 데이트 폭력 피해자]
"'나랑 결혼할거라는 각서를 쓰면 규제하는 것도 풀어주겠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안써줬죠."

정씨의 심리 상태는 어떨까.

[현장음]
"사람을 한 번 그려보세요. (사람이요?) 얼굴도 좀 그려주세요."

정씨는 잔뜩 화가 난 채 정면을 응시하는 남성을 그렸습니다.

바로 남자 친굽니다.

[현장음]
"지금 뭐하고 있는 거에요? (쳐다봐요) 기분이 어떤 상황이에요. (짜증났어요) 왜 짜증 났어요? (그냥, 항상)"

[조성남 / 을지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저는 심각한 상태라고 보는 데요. 자존감이 낮아지고, 나중에는 ‘나는 이런 대접을 받아도 당연하다’고 여겨지게 되서 (폭력에) 무감각해지죠. 상대방은 점점 더 심하게 괴롭히고, 악순환이 되는 거죠.”

경찰은 데이트 폭력을 뿌리뽑겠다며 모든 경찰서에 전담팀을 꾸리고, 전담 수사 요원을 배치했습니다.

하지만 초동 대처를 맡은 일선 경찰들은 데이트 폭력 사건에 적극 개입할 수가 없습니다.

[A지구대]
"강력하게 뭔가를 할 수 없어요. 통제하거나 제재할 수 있는 법이 저희 경찰에게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현행법 상 데이트 폭력 피해자는 경찰의 보호 조치 대상에서 빠져있습니다.

범죄 가능성이 우려돼도 가해자에게 경고장을 보내는게 전부.

피해자가 신변 보호 요청을 해도 인력 부족이 발목을 잡습니다.

[B지구대]
"상시 지킬 수가 없잖아요. 그게 애매해요. 아무리 신경을 써도 개인 경호 업체처럼 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결국 사건이 발생한 뒤에야 수습에 급급한 상황, '사후약방문'이 따로 없습니다.

[박남춘 / 더불어민주당 의원 (데이트폭력방지법 발의) ]
"개인적인 문제까지 공권력이 개입해야하느냐 하는 인식이 있었왔던 것 같습니다. 데이트 폭력 방지법도 필요하고, 경찰관 직무 집행법도 개정해줘야 해요."

'사랑한다’는 말로 포장된 폭력.

누군가에겐 사랑일지 모르지만, 당하는 사람에겐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고 있습니다.

채널A 뉴스 최주현입니다.

연출 : 김남준
글·구성 : 지한결 이소연
그래픽 : 김승훈
채널A 최주현 기자 (choig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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