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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깊은뉴스]사장도 직원도 아닌 ‘매니저의 비극’
2018-03-07 19:59 사회

한 복합 쇼핑몰에서 일하던 아동복 매장 매니저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는데요.

자영업자라고 하기에도, 직원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유통업계 종사자들이 감내해야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숨어 있었습니다.

김민지 기자의 더깊은뉴스입니다.

[리포트]
지난달 쇼핑몰 재고창고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50대 여성 A 씨.

결국 다음 날 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유아복 매장을 운영하던 매니저였습니다.

큰 기대를 갖고 지난해 8월 입점했지만 과다한 근로에 몸과 마음 고생이 심했습니다.

[A씨 유가족]
"힘들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죠. 피곤하다 힘들다. 빨리 나갈 때는 아침에도 나가고, 퇴근 시간이 많이 늦어요."

유가족은 A씨가 가게 문을 연 뒤 불과 사나흘 밖에 쉬지 못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A 씨가 일하던 쇼핑몰은 1년 365일 쉬지 않고 운영되기 때문입니다.

[A 씨 유가족]
"아버지 생신인데도 아침에 잠시 갔다오고, 전 날에도 새벽에 들어오고 재고를 정리하거나 바쁠 때는 3시간 이상을 자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A 씨는 다른 자영업자들처럼 실제 매장의 주인은 아니었습니다.

해당 제품 업체와 매출의 일부분을 받는 조건으로 계약한 '중간관리자' 신분이었습니다.

해당 제품을 유통 업체 매장에서 판매하는 직원처럼 일해왔지만 법적 지위는 직원이 아닌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있습니다.

계약서에는 마음대로 폐점하면 계약종료시점까지 하루 100만 원씩 배상금을 내라는 조항도 있습니다.

일이 힘들고 매출이 떨어져도 마음대로 폐점할 수도 없는 겁니다.

다른 백화점이나 쇼핑몰 중간관리자들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해당업체의 직원처럼 일하지만 신분은 개인사업자여서 휴식이나 매장관리를 마음대로 못하는 겁니다.

[△△백화점 중간관리자]
"샌드위치도 아니고 샌드위치 안에 들은 콩고물도 아니고... 기업은 소위 말해 수수료처럼 하다가 월급 문제, 고용 문제 이런 게 있으면 다 중간관리로 돌려요."

상당수 중간관리자는 원래 해당업체 직원으로 일하다 퇴사한 뒤 개인사업자 자격으로 재계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해 1월 대법원은 모 백화점 중간관리자 30여 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근로자로서의 성격이 있다며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하기도 했습니다.

[전직 중간관리자(퇴직금 청구 소송 중)]
"모든 것을 본사에서 지시를 해요. 맞춰진 시간에 나가서 일을 하는 거에 불과한데 // 세금이라든가 이런 법을 벗어나기 위해서 너희는 개인사업자다."

2011년 보험설계사와 학습지교사 등 특수형태 업무 근로자 실태조사를 했던 고용노동부는, 백화점 중간관리자들도 특수고용 적용 여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근무 장소와 시간 등 운영을 사업주로부터 감독받는 성격이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당시 파악된 중간관리자는 다른 유통업체를 제외한 백화점만 따져도 1만 2천여 명에 달했습니다.

최소한의 휴일을 보장해달라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명절에도 쉬지 않는 대표적인 쇼핑몰 앞입니다. 최근 정부는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겠다며 근로시간 단축법을 개정했지만 이곳과는 실상 동떨어진 얘깁니다."

[조한샘 / 서울시 관악구]
"이용자 입장에선 365일 이용할 수 있다고 하면 편리한 부분이 있는 건 맞는데 명절은 보내셔야 되지 않을까."

지난해 한 노동단체가 백화점 판매직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10명 중 9명이 의무휴업 도입을 희망했습니다.

유통업체의 의무휴업을 규정할 수 있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지난해 11월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김종훈 / 민중당 의원]
"장시간 노동에 노출돼 있는 유통산업 노동자들이 마음 편히 쉴 수 있었으면… 영업시간을 규제하고 의무휴일을 확대해야… "

[고용노동부 관계자]
"연구용역이나 이걸 통해서 유통업을 보려고는 좀 하고 있어요. (중간관리자 규모가) 전체 얼마냐. 그걸 뜯어서 봐야 될 때가 된 거 같아요."

우리 사회 각계가 휴식을 보장받을 권리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야할 시점입니다.

[A 씨 유가족]
"(중간 관리자에 대한) 12시간 근무, 365일 노동이라고 하는 건 과연 같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인지. 자기가 쉬면 다른 사람도 쉴 수 있어야 한다는 배려가 있어야 되는데 그런 배려가 없는 것 아닌가…"

채널A 뉴스 김민지입니다.

mettymom@donga.com
연출 천종석
글·구성 지한결 이소연
그래픽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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