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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깊은뉴스]범죄 저질러도 끄떡없는 의사면허
2018-05-28 19:45 사회

중대한 형사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끄덕없는 면허증이 있습니다.

바로 의사면허인데요. 형을 마치고 나면, 다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 현행 의료법이 논란입니다.

최주현 기자의 '더 깊은 뉴스'입니다.

[리포트]
귀에 익은 히트곡이 울려퍼지는 지하 작업실.

4년 전 수술을 받다 숨진 고 신해철 씨의 흔적입니다.

당시 집도의는 TV 출연 등으로 유명했던 강 모 원장.

[최씨 딸]
"신해철 씨한테 했던 패턴이 저희 아버지가 당했던 게 비슷해서 설마 그 병원 아니야? 했는데…"

강 원장에게 혈전 제거 수술을 받았던 아버지는 2년 간의 투병 끝에 숨을 거뒀습니다.

유족들은 수술 당시 강 원장이 했던 설명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최씨 가족]
"분명히 간단한 시술이라고 했는데, 수술을 거의 9시간 넘게 받으신거죠. (당시 아버님의 상태가 기억이 나세요?) 너무 충격적이었죠. 거즈에 피 묻어있고."

놀란 가족들이 큰 병원으로 옮기겠다고 나서자, 강 원장은 무작정 붙잡았습니다.

[최씨 가족]
"'전원(병원 이전)을 하면 아버지가 돌아가실 수 있다'고, 완전 최악의 상황까지 환자를 붙잡고 있다가 다른 큰 병원으로 전원시키는거죠."

민사 소송에서 의료과실이 인정돼 4억 원의 손해배상 판결이 났지만 강 원장의 의사 면허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최씨 가족]
"아무리 의료 사고를 내도 면허에는 지장이 없는 거예요. 의사면허가 살인면허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너무 소름끼치고…"

의사 면허를 취소하려면 허위 진단서 작성이나 낙태, 환자 개인 정보 유출 등 16개 사유에 해당돼야 합니다.

과실치사, 즉 수술 도중 사망 사고는 이 사유에 들어있지 않습니다.

"진현아, 아빠 왔다.
이 못난 아빠다 용서해다오. 진현아, 사랑해."

오열하는 아버지를 웃으며 바라보는 영정 속의 아들.

육군 하사였던 아들은 치질 수술을 위해 마취를 받은 뒤 영영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김윤기 / 故김진현 하사 아버지]
"혼수 상태에서 신체만 반응만 하는거야. 그 상황을 보고 '내 아이는 이제는 죽는구나, 저래 죽는구나' 의사들은 어떻게 할줄 몰라 우왕좌왕 하더라고. "

3년 간 계속된 의료 소송.

의무 기록이 조작된 사실이 드러나, 마취 의사 A씨는 금고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의사 면허는 '15일 정지'에 그쳤습니다.

[김윤기 / 故김진현 하사 아버지]
"어이가 없죠. 이게 뭐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진료 기록 조작해가지고 의료사고 내서 자격정지 내리는 것도 1호랍니다. 최초의 사건이래"

의사 면허 취소가 되더라도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3년이 지나면 면허 재교부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신청 절차도 간단합니다.

보건복지부에 반성문 등 6가지 서류를 낸 뒤, 형식적 심사를 거치면 됩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
"기간 지나면 재교부 신청들어오면 해주는 것이에요. 통상 관례에요. 의사한테는) 밥그릇 해당되는 것인데 못하게 하면 당연히 소송 걸 것이고…"

지난 2007년부터 10년 간 의사 면허 재교부를 신청한 94건은 모두 승인됐고, 지난해 단 한 건의 재교부 신청만 보류됐습니다.

이유는 뭘까.

[채널A 리포트 (2012년 8월)]
"김 씨는 11가지 약물을 포도당과 식염수에 섞어 이 씨에게 투약했습니다. 이 씨는 다음날 한강 공원 주차장 차 안에서 숨진채 발견됐습니다."

산부인과 의사였던 김씨는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3년 간의 면허 취소 기간이 끝난 지난해 면허 재교부를 신청했습니다.

김 씨는 결과를 기다리며, 수도권의 한 병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병원 관계자]
"(여기에서 계속 근무하시는거예요?) 행정적인 일 하시는 거죠. 행정. 직원들 인사관리, 총무 이런거."

김씨가 올해 다시 교부 신청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보건복지부 관계자]
"계속 (재교부를) 안해줄 수 있는 명분이 없는 것이지. (의사들은) 복지부가 재량을 가지고 재교부를 안해주는게 법의 취지를 벗어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가 더 끌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독일의 경우 비윤리적 행위를 한 의사는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고 법에 명시하고 있고, 미국은 형사 처벌을 받은 의사에게 무기한 면허 취소 처분을 내리기도 합니다.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끄떡없는 한국의 의사 면허, 환자와 가족들의 가슴에 못을 박고 의사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할 싯점입니다.

채널A 뉴스 최주현입니다.

최주현 기자 (choigo@donga.com)
연출 천종석
구성 고정화 김대원
그래픽 전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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