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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깊은뉴스]“나라의 아들인데…아프면 너의 아들”
2018-06-06 19:23 사회

호국 장병들을 기리는 현충일, 우리가 더 생각해봐야할 문제가 있습니다.

선진국일수록 나라를 위한 헌신과 희생을 국가가 철저히 보상하는데요.

우리나라에서 군 복무 중 다친 장병들은 군에서도, 그리고 제대를 하고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정하니 기자의 '더깊은 뉴스'입니다.

[리포트]
[현장음]
"견딜만하지? 괜찮지?" (네)

등뼈 속 척수로 주삿바늘이 들어갑니다.

교감 신경에 국소 마취제를 주입하는 겁니다.

4년 전 군복을 벗게 한 이 힘든 치료를 강병진 씨는 평생 받아야 합니다.

강씨가 앓고 있는 병은 CRPS라 불리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

외상을 입은 뒤 약한 자극만 받아도 극심한 통증이 오는 '희귀 질환'입니다.

[강병진] 
"다리가 타들어 가듯 아픈 통증이 있었고, 바람이 불면 칼 같은 것으로 슥슥 베는 느낌. 망치나 손으로 뼈있는 부분을 계속 때리는 느낌으로 오고 있어요."

군 복무 중이던 5년 전, 살얼음이 낀 계단을 오르다 미끄러져 발목을 다친 게 화근이었습니다.

민간 병원은 인대가 끊어지고 뼛조각이 떨어져 나갔다고 진단했지만 군 병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강병진]
"국군수도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반깁스를 아예 풀어버리고 걸어서 가란 거예요."

발목은 갈수록 부어올랐고, 통증도 심해졌지만 군의관은 꾀병이라며 면박만 줬습니다.

견디다 못해 찾아간 민간병원에서 강씨는 복합통증증후군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의병사 제대를 하기까지 무려 여섯 달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김미자 / 강병진 씨 어머니]
"부대에서는 꾀병으로 알고 겉으로는 멀쩡하니까 방치해서 CRPS로 왔잖아요. 솔직한 말로 부대를 불사지르고 싶었어요."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 강씨를 더 좌절시킨 건 국가보훈처였습니다.

7급에서 6급으로 보상 등급을 올리는데 20개월이 걸렸습니다.

대기자가 많다는 이유였습니다.

[김미자 / 강병진 씨 어머니]
"애는 아파서 죽어가고 있는데 그쪽에선 너무 느긋하게 처리하고 있고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죠"

7년 전 군대 상급자가 던진 야전삽에 발등 힘줄이 파열된 A씨.

군에서 세월을 허송하며 치료의 골든 타임을 놓쳤습니다.

[A씨 / 의병사 제대]
"한 달이 지나가면서 힘줄이 더 이상 연결이 안 되는 그런 단계까지 온 거죠. 빨리 치료했으면 가볍게 치료됐죠."

장해 판정을 받고 제대했지만, 황당한 일은 이때부터 시작됐습니다.

국가유공자 신청을 위해 A씨가 부대에서 받은 공무상병 인증서입니다.

군 복무 중에 발생한 부상이나 질환에 대한 원인과 경위를 담고 있어, 국가 유공자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서류입니다.

그런데 이 인증서에 적힌 병명은 '수두'.

A씨와 가족들은 경악했습니다.

[A씨 / 의병사 제대]
"피부병에 관련돼 공무상병인증서가 날아왔어요. 제가 따지니까 너는 뭐 어차피 수두로 입원했지 않느냐"

A씨의 항의에 부대가 다시 발급해준 인증서도 엉망이었습니다.

[A씨]
"제가 왼쪽 다쳤는데 오른쪽 다쳤다 이렇게 돼 있는 것도 있고. . 날림이에요. 날림얼마나 대충하는지를 아셔야 돼요."

국가유공자 신청도 황당함의 연속이었습니다.

국가유공자 등록을 위해선 서류 심사로 자격을 따진 뒤 신체 검사를 통해 상이 등급을 매깁니다.

하지만 신체 검사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거의 5분 만에 끝났어요. 제가 다친 자료라든가 발상태만 보고 끝났어요. (검사를) 대충한다는 것은 이게 납득이 안되는.
난 어쨌든 정당하게 검사를 받고 싶었어요.

보훈당국은 이런 수박 겉핥기식 검사만으로 유공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2년간의 법정 다툼 끝에 7급 판정을 받았지만, 나라에 대한 불신만 커졌습니다.

[A씨 / 의병사 제대]
"나를 지켜주지 않을 것이다. 군이든 뭐든. 국가유공자를 뽑아서 지원해 주는 게 원래 (보훈청의) 역할인데 어떻게 보면 역할이 반대로 돼 있죠."

매년 국가유공 신청자의 40% 이상이 보훈처 심사에서 탈락하고, 탈락자의 대부분은 '등급외 판정'을 받습니다.

국가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내는 방법도 있지만 상당수는 중도에 포기합니다.

[서상수 변호사]
"(국가가) 손 놓고 '네 문제다, 입증해라.' 군 생활하면서 자기가 나중에 소송해야지 하고 자료를 모아두는 경우가 드물지 않겠습니까."

[문재인/ 지난해 현충일 추념사]
"국가를 위해 헌신한 한분 한분이 대한민국입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면 보상받고 반역자는 심판받는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정부는 국가 유공자에 대한 처우를 강화하겠다며 국가보훈처를 장관급으로 격상시켰습니다.

하지만 겉모습과 자리만 커졌을 뿐, 내실과 정성이 따라가지 못하는 건 아닌지 심각하게 되짚어봐야 할 때입니다.

[어머니]
"멀쩡하게 건강하게 제대하면 나라의 아들이고 다치면 너희 아들이다. 끝까지 책임져 주지 않으니까. 딱 맞는 말 같아요."

채널 에이 뉴스 정하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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