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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 ‘톡’]당혹스러운 조명균의 ‘변신’
2018-10-18 19:10 정치

2007년 10월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정상회담. 왼쪽 뒤편에 앉아 기록하고 있는 사람이 조명균 당시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8월 13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뒷모습은 조명균 통일부 장관9월 14일 개성공단에서 열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에서 참석한 조명균 통일부장관(오른쪽)과 북한 리선권이 각각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는 꽤 오래된 인연입니다. 2000년 통일부 출입기자 시절 교류협력국 심의관으로 인사를 나눴던 게 첫 대면으로 기억합니다. 진중하고 차분하면서도 자신이 맡은 임무에 대해 조리있게 설명하는 모습에서 호감을 느꼈던 기억도 납니다.

이후 교류협력국장이 됐고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개성공단사업지원단장을 거쳐 청와대에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으로 2차 남북정상회담을 치릅니다. 2007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정상회담 당시 정상회담 배석자로 대화 내용을 기록한 ‘죄’로 2012년 대선당시 불거진 NLL 대화록 파문 속에 희생양이 되는 불운을 겪었죠.

조 장관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천주교 사제수업을 받고 있었고, 그 무렵 서울 혜화동에서 세상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오면서 조 장관은 화려하게 부활했고 초대 통일부 장관으로 신 르네상스 시대를 열고 있는 남북관계를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조 장관은 남북관계 경험이 많은 편입니다. 북한의 실상을 접할 기회도 많았고 북한에 흠 잡힐 만한 일은 하지 않는 신중함도 두루 갖췄습니다. 술을 잔뜩 먹이고 자신을 시험하려는 북한의 시도를 뿌리친 일이 있었다는 말도 사석에서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노련한 협상가라는 인상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카메라에 노출되는 남북 수석대표간의 대화는 팽팽한 기싸움을 펼치기 위한 보여주기의 장입니다. 북한의 경우는 특히 언론에 노출되는 시간에 많은 신경을 씁니다.

유감스럽게 조 장관은 매번 회담 상대인 리선권과의 모두 발언에서 조금 밀린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딱 보기에도 거칠어 보이는 리선권은 고위급 회담에 나설 때 마다 전 과정을 생중계 하자는 말로 조 장관을 괴롭혀 왔습니다. 그 때마다 조 장관이 “평양에도 실시간 생중계 하는 조건으로 모든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합시다”라고 역제안 하는 모습을 봤으면 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민감한 내용이 있으니 관례대로 하자는 조 장관의 목소리는 왠지 자신없게 들리곤 합니다.

압권은 지난 8월 고위급 회담 당시 조 장관 발언입니다. “제가 수줍음이 많아서 기자들, 카메라 지켜보는 앞에서 말주변이 리 단장님보다 많이 못 하다.” (조명균 대한민국 수석대표)

10월 15일 두 사람이 나눴던 대화 내용도 소개해 보겠습니다.

“바로잡을 문제들이 있다. 남측이 더 잘 알거다. 연말까지 분투하길 기대한다.” (리선권)

“말씀 주신대로 역지사지하며 풀어가겠다.” (조명균)

대한민국 통일부 장관이 취할 발언 태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조 장관은 10월 5일 평양에서 리선권의 핀잔까지 들었던 터입니다. 10.4 선언을 기념하기 위한 대표단을 인솔한 우리 정부 대표단장으로 방북한 조 장관이었습니다.

약속 시간에 2, 3분 늦은 조 장관이 리선권에게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퉁명스러운 목소리의 리선권은 “단장이 앞장서야지. 이래서야 되겠느냐”며 힐난했습니다.

머쓱했는지 조 장관은 “시계를 당장 가서 좀 좋은 걸로 사야겠네. 제 시계를 좀 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리선권의 다음 발언은 더 가관입니다. “그렇게 관념이 없으면 시계가 주인을 닮아서 저렇게 떨어진단 말이예요.”

오랜 기간 조 장관의 성정을 지켜봐온 기자의 입장에서는 조 장관의 태도가 아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살아온 인생이 그랬고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늘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배려해 왔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제가 가까이 접근하고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면서 알았던 조 장관이라는 전제하에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10월 15일 보여준 조 장관의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탈북자 출신 기자의 판문점 풀기자 취재를 불허한 조치를 보고 느낀 겁니다.

“책임은 제가 지겠다”고 한 대목이나 “똑같은 상황이라 한다면 같은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한 대목에서는 오만함까지 느껴집니다.

조 장관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통일부 장관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남북대화와 화해 모드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지켜야 할 원칙이 있고 넘어서서는 안될 금도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으로 받아들인 탈북자의 인권과 언론자유는 우리 공동체가 지켜왔고 앞으로도 굳건히 수호해야 할 근본가치입니다.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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