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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 ‘톡’] 홍남기를 키운 깨알메모의 힘
2018-11-09 18:18 정치

사진1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11월 9일 발표된 홍남기 신임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와는 작은 인연이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시절 대통령 국정기획비서관으로 지낼 당시 홍 후보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2015년의 가을 이었는데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해외순방에 나섰던 시기입니다. 대통령이 없으니 좀 여유가 있을 것 같다고 하자 다른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주된 이유는 ‘일일특이동향’이란 보고서 작성 때문이었습니다. 외국에 나가있을 때 언론이 보도하지 않은 내용 중 대통령이 꼭 알아야 할 정보를 요약 보고했는데 박 전 대통령이 흡족해 했다는 겁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연설문 메시지나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 말씀자료의 상당부분을 홍남기 후보자가 근무했던 기획비서관실이 작성했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아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홍 후보자의 보고서 정리 능력은 대한민국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 그를 경험해 본 사람들의 공통된 평가입니다. 저 역시 홍 후보자의 보고서에 무릎을 탁 친 적이 두 번 있었습니다.

제가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할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홍 후보자는 주미한국대사관 기획 예산관(공사참사관 급)으로 파견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표 홍남기 후보자가 미국 워싱턴 주미한국대사관 근무당시 만든 알면 도움 되는 10가지 팁. 워싱턴에서 생활할 때 유용한 생활정보(왼쪽 문서)와 귀국 준비할 때 필수적인 정보(오른쪽 문서)를 담고 있다.

저를 포함한 특파원들에게 보내준 미국 생활 ‘꿀팁’ 문서 중 대표적인 2개를 소개해 드리려고 하는데요. 첫 번째는 워싱턴에서 생활하면서 알아두면 좋을 10가지 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맛있는 꽃게를 살 수 있는 곳 △퇴근길에 부담 없이 맥주 한잔 할 수 있는 곳 △부인들이 방문하기 좋은 곳 등 알짜 생활정보 10가지가 잘 정리돼 있습니다.

두 번째 문서는 해외주재원 생활을 마무리 하는데 있어서 꼭 알아야 할 핵심적인 정보만 콕 찍어 요약한 문서였습니다. 주재원 생활을 할 동안 빌려 썼던 집에 생긴 얼룩이나, 낙서 등을 잘 처리하지 않으면 미리 넣어둔 보증금을 다 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면 잘 처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한 비책이 적혀 있습니다. 그 외에 은행계좌 정리법, 이사 후 배달되는 우편물 수령법 등 소소하지만 꼭 알아야 할 정보를 집대성한 작은 백과사전입니다.

언젠가 홍 후보자의 수첩을 본 적이 있는데 작은 글씨로 수많은 메모가 빼곡히 적혀있었던 장면이 기억납니다.

워싱턴에서 돌아온 홍 후보자는 이후 △기재부 대변인 △정책조정국장 △대통령직 인수위 △미래창조과학부1차관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국무조정실장으로 중용됐습니다.

이 정부에서 잘 나가는 변양균 라인, 한양대에서 동문수학한 임종석 비서실장 후광, 대권주자로 주목받는 이낙연 총리의 인맥강화 등 인사가 이뤄진 뒤 이런저런 ‘인사해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에는 타고난 꼼꼼함과 탁월한 정리능력, 그리고 인사권자가 가려워하는 포인트를 긁어줄 수 있는 정무감각 등이 어우러져 경제사령탑 자리에 오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홍 후보자가 특유의 근면, 성실 등을 주무기로 경제부총리 후보자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정말 이 분야의 실질적인 책임 장관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현직이지만 전임자가 될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씁쓸한 퇴장은 홍 후보자에게도 적지 않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11월 9일. 예산정국에서 전격적으로 단행된 경제부총리 교체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누가 뭐래도 소득주도성장의 정책기조를 꺾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혁신성장과 공정경제 구현의 의지 역시 강해지면 강해졌지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30년 넘게 경제 관료의 외길을 걸어왔던 무난한 ‘늘공’에겐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가시밭길이 놓여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홍 후보자를 만든 것은 꼼꼼한 깨알 메모 아니었을까 합니다. 앞으로 보여줄 ‘강원도의 힘’은 무엇일까요?

하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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