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독립선언 기획]①한국 독립을 열망한 ‘후세 다쓰지’
[채널A] 2019-02-07 19:55 뉴스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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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는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역사적 현장을 찾아가는 연속기획을 준비했습니다.

첫 순서는 100년 전 도쿄 한복판에서 있었던 독립만세 운동 현장입니다.

3.1 만세 운동의 도화선이 된 이 거사에는 한민족의 외침에 감동한 일본 양심세력의 도움도 있었습니다.

김범석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대독] "전 조선청년독립단은… 세계 만국의 앞에 독립을 기성하기를 선언하노라… "

1919년 2월 8일 재일조선유학생들이 낭독한 독립선언문은, 3·1운동 등 이후 한국 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됐습니다.

조선 유학생들은 내란죄 구형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를 일본 인권 변호사 후세 다쓰지가 변호를 해주었습니다.

그는 일본인 최초의 대한민국 건국훈장 수상자이기도 합니다.

15년 전 그를 대신해 훈장을 받았던 외손자 오이시 스스무 씨는 2·8 독립선언은 필연적이었다고 말합니다.

[오이시 스스무 / 고 후세 다쓰지 외손자]
"2·8독립선언은 정말 멋진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후세 변호사가 있었든 없었든 말이죠. 한민족만의 생각이 아니라 세계적인 정당성라고 생각합니다."

후세 변호사는 사형 위기에 처한 조선 유학생들을 변호해 1년 미만의 금고형을 받아냈습니다.

이후 박열과 부인 가네코, 의혈단원 김지섭 등 일본에서 활동한 조선 독립운동가들의 변호를 도맡았습니다.

1923년에는 동아일보의 후원으로 한국에 처음 방문해 조선의 독립에 대한 순회 강연회를 열었고, 풍수해를 입은 우리나라를 위해 성금을 모금하기도 했습니다.

[오이시 스스무]
"후세 변호사도 농민이었죠. 농민에 대한 동정이 토대가 돼 한국인의 변호에 힘을 쏟은 것이 아닌가.
그에게 있어 의무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선을 도운 대가는 컸습니다.

미국 스파이로 몰리며 변호 활동을 금지 당했고, 감시와 따돌림은 오이시 씨까지 이어졌습니다.

2·8독립선언 100주년을 맞아 외할아버지의 묘비를 찾아 묵도를 하는 오이시 씨.

후세 변호사가 살아있다면 지금의 한국에 무슨 이야기를 할까.

[오이시 스스무]
"외할아버지의 업적이 결실을 맺어 지금 한국이 훌륭한 나라가 돼 기쁘다고 생각할 거예요.
이제 안심하고 편히 잠드세요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가마쿠라에서 채널A 뉴스 김범석입니다

bsism@donga.com
영상취재 : 박용준
영상편집 : 이태희
그래픽 : 김승훈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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