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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했나?”
2019-03-12 16:46 정치

제2차 북미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위원장의 숙소인 ‘멜리아’ 호텔로 취재차 잠입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아직 베트남에 도착하지 않은 때였습니다. 하지만 미리 도착한 북한 경호팀 관계자들로 호텔 안 곳곳은 통제가 강화됐었습니다. 호텔 17층부터 김 위원장의 스위트 룸이 있는 22층까지는 일반 투숙객조차 올라갈 수 없었습니다.

호텔 직원용 승강기를 통해 19층까지 올라갔습니다. 19층은 전 객실을 열어둔 채 호텔 직원들의 청소가 한창이었습니다. 다음 날이면 올 김 위원장 일행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한참을 19층에서 일어나는 작업들을 지켜보고 있던 그때, 위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누군가가 제게 다가왔습니다.

“4시면 작업 완료됩네까”. 북한 말씨로 묻는 말에 처음에는 당황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그 사람은 재차 말했습니다. “오후 4시부터 우리가 이 층을 사용하려 하는데 그때 방 청소가 끝났는지 내가 점검 와도 되는 거요?” 북한 경호팀 관계자로 보였던 그 사람은 저를 호텔 관계자로 착각한 듯했습니다. 그래서 대답해 줬습니다. “4시면 완료되니 그때 내려오세요.”

하지만 오후 4시에 내려온 사람은 그 사람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북한 호위사령부 100여 명이 한꺼번에 19층으로 내려왔습니다. 각자 자기 짐을 들고 배정된 호텔 방을 찾는 모습이었습니다. 좀처럼 보기 힘든 현장 포착이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김철규 호위사령부 부사령관도 있었습니다. 그는 현장을 떠나려는 저를 불러 세웠습니다. “너 여기 왜 있니”.

그와 한참 설전이 오가다가 결국 휴대전화를 압수당한 채 호텔 비상구 계단에서 2시간 동안 억류됐습니다. 한 명의 경호팀 관계자가 옆을 지키고 서 있었습니다. 흰색 와이셔츠에 통이 넓은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은 그의 키는 190cm 가까이 돼 보였습니다. 2시간 동안 그는 저의 어떤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손에 이끌려 호텔 관계자와 베트남 경찰이 있는 호텔 로비로 인계됐습니다.

여권을 보여주고 저의 신원에 대해 1시간 동안 조사가 이뤄졌습니다. 조사가 마무리될 때쯤 말 한마디 없던 그 북한 경호팀 관계자가 제게 처음 말을 걸었습니다. “결혼은 했나?” 제가 대답했습니다. “안 했습니다.” 그러고 질답이 오갔습니다. “왜 아직 결혼도 안 했나?” “남한은 30살에 결혼 잘 안 합니다.” “희한하구먼”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결국, 신원 조회 후 별 탈 없이 풀려났습니다. 현장에서 빠져나오자 다리 힘이 풀렸습니다. 하지만 ‘결혼’과 관련된 북측 관계자와의 ‘대화’는 아직까지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그 대화는 3시간 동안 긴장된 순간에 있었던 단 하나의 순수한 ‘무언가’였습니다.

백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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