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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원정대]“야구 하고 싶어요”
2020-09-18 15:59 스포츠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지명된 A선수에게 물었습니다.
Q. 프로 데뷔해서 스타 되면 뭐해보고 싶어요?
A. 야구만 하고 싶어요.

부상으로 한 시즌을 통째로 날린 B 선수에게 물었습니다.
Q. 다음 시즌 목표는 뭐에요?
A. 안 아프고 야구 하고 싶어요.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C 선수에게 물었습니다.
Q. 목표한거 다 이뤘어요?
A. 아직이요. 50살까지 야구 하고 싶어요.

18년 프로 생활을 정리하고 마지막 시즌을 뛰는 D 선수에게 물었습니다.
Q. 은퇴를 앞두고 가장 바라는 게 뭔가요?
A. 남은 경기 잘 해서 한국시리즈 우승하고 싶어요.

저마다 느끼는 감정은 다 달랐을 겁니다. 설렘일 수도, 아쉬움일 수도, 후련함일 수도 있습니다. 세심한 표현에 낯선 선수들입니다. 하지만 답변은 모두 한결 같았습니다. "야구 하고 싶어요." 짧고 투박한 말에선 진심이 묻어났습니다.

E 선수의 기자회견장이었습니다. 음주운전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방출되고 한국에 돌아온 직후였습니다. 한국에서도 아웃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거셌습니다. 기자들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왜 복귀를 결정했습니까?“ "좋아하는 야구를 못하는 게 반성이라고 생각 안하나요?" 10년차 베테랑 선배 기자들은 타석에 선 빛바랜 '4번 타자'에게 다양한 변화구를 던졌습니다. 때로는 커브였고 때론 슬라이더였습니다. 구종은 달랐어도 유인하는 바는 같았습니다.



하지만 타자는 끈질겼습니다. "달라진 모습을 보이겠다"는 답변으로 질문을 커트, 커트, 커트했습니다. 참다못한 제가 결국 투박한 직구를 날렸습니다. "야구 계속 하겠단 건가요? 그만둘 생각 없어요?" ‘피라미’ 기자의 질문에, 순간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그가 입을 뗐습니다. "야구 할 자격이 없다는 거 압니다. 그래도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싶습니다."



기어코 야구를 하고 싶단 거였습니다. 저도 사실, 기어코 야구를 그만두겠단 답변을 들으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야구기자보단 경찰기자에 가까웠던 저는, 선수들이 그렇게나 야구를 원한다는 걸 몰랐습니다. 신인이든 은퇴를 앞뒀든, 잘할 때든 못할 때든, 발을 들일 때든 물러서야 할 때든, 끝까지 야구를 놓지 못한단 거를요. 선배 기자들의 변화구 속엔 사실, '모든 선수들은 야구를 하고 싶어 한다'는 대전제가 깔려 있었단 걸 말입니다.

9회말 2아웃 변화무쌍한 야구장. 오늘도 그들은 야구를 하면서도, 야구를 하고 싶어하는 중일 겁니다. 선수들의 땀방울을 전하는 마음가짐이 이젠 제법 무거워집니다.

김유빈 기자 eub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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