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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보다]1300명 농락한 ‘남성판 n번방’…피해자들의 증언
2021-06-12 19:22 사회

[조주빈 / '박사방 사건' 피의자(지난해 3월)]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난해, 온국민을 경악케 했던 n번방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습니다.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 피해자들은 남성이라는 겁니다.

제2의 조주빈이라 불리우던 '남자 n번방' 사건의 피의자.

SNS 상에서 자신을 철저히 여성으로 둔갑시켰던 그의 실체는 29살 남성 김영준이었습니다.

8년 가까운 범행기간, 1000명이 넘는 남성들이 그의 사기극에 속아 넘어갔습니다.

Q1. 피해남성만 1300명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겁니까?

지난달, '제2의 n번방 사건'이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을 때만 해도 범인이 여성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잡고보니, 범인은 29살 남성 김영준이었습니다.

2013년 11월부터 최근까지, 범행기간만 7년 7개월인데, 랜덤 채팅 앱에 여성사진을 올린 뒤에 연락오는 남성들과 채팅을 하다가 영상통화를 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영상통화가 시작되면 남성들의 화면에 여성들의 음란 동영상이 나오도록 조작했는데, 김영준은 이때, 영상을 보면서 음란행위를 하는 남성들의 모습을 촬영했던 겁니다.

일명 '몸캠 영상'이라고 하는데, 피해자만 1300명이고, 김영준이 보관중이던 몸캠 영상만 2만 7천개였습니다.

촬영은 물론, SNS 등을 통해 영상을 유포·판매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Q2. 영상을 보면 자극적인 장면들도 여러컷 있다는데, 이런 건 어떻게 찍은 거죠?

김영준은 음란 동영상 속 여성들이 말을 하는 장면에서 여성들의 입모양과 비슷하게 얘기를 합니다.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피해 남성의 증언을 들어봤습니다.

[피해 남성]
"카메라 구도를 굉장히 강요했습니다. 예를 들면 역광 같은 것에 굉장히 민감하고, 카메라를 최대한 잘 보이게 설치해 달라고 하면서 신체 특정부위를 보여달라… 이런 식의 엽기적인 행동들을 지시했거든요."

Q3. 목소리만 들으도 남자라는 걸 알 수 있었을 텐데, 김영준을 여자라고 생각했다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데요?

음성변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여성인 것처럼 목소리를 변환했던 겁니다.

또다른 피해 남성,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피해 남성]
"피해자들마다 범인이 보낸 영상이 다 다르더라고요. 수만 개의 영상들을 각자 상황에 따라 보내면서 (여성) 입모양을 다 따라서 연습을 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알아채지 못하고…"

Q4. 범행기간만 8년 가까이 되잖아요. 최근에야 국민청원을 통해 관련 내용이 알려졌는데, 피해자들은 왜 신고를 안 한 걸까요?

전문가들은 김영준이 같은 남성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승재현 /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피해 남성들의 입장에서는 유혹에 빠져서 자신들이 음란한 행위를 했다는 점 때문에 신고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을 거예요. 신고를 했을 때 사회적으로 받는 비난이 두려웠을 것이고, 그래서 오랜 기간 범행을 지속할 수 있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히나 피해 남성 중 39명은 아동과 청소년들이었습니다.

이중 7명은 "여성을 만나게 해주겠다"고 유인해 자신의 집과 모텔 등에서 유사 성행위를 시키고, 이 모습을 촬영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Q5. 피해남성들에게 심한 협박을 하기도 했다면서요?

'몸캠' 범죄의 경우에 영상 유포를 미끼로 피해자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영준은 금전 협박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원한 건 따로 있었습니다.

[피해 남성]
"영상통화를 그만하고 싶다고 의사를 내비치면 본성을 드러내면서 영상을 유포하겠다 판매하겠다, 지인들에게 보내겠다 협박하면서… 내가 시키는 대로 지시한 행동을 찍어라 협박을 해서 성착취물을 강요를 한 거죠. 화장실에 가서 옷을 벗게 한 다음에 무릎 꿇고 손 들어라, 동물 흉내를 내라… 상상을 초월해서 그래요."

경찰은 이같은 성착취 영상을 판매해 벌어들인 수익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습니다.

영상 촬영부터 유포, 판매 등 범행의 종류만도 다양하기 때문에 공범의 존재 가능성도 제기됐는데,

김영준은 극구 부인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김영준 / 나체 영상 유포 피의자]
"(혼자 하셨습니까? 공범있습니까?) 저 혼자했습니다."

현재 김영준에게 적용된 혐의만 해도 5가지입니다.

특히 아동 성착취물 제작 혐의의 경우에 징역 5년에서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는데요,

경찰은 형량을 줄이기 위해서 단독범행을 주장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박사방 사건' 피의자 조주빈의 경우엔 범죄단체조직죄가 인정돼서 1심에서 징역 45년, 2심에서는 징역 4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사건을 보다, 최석호 기자였습니다.

bully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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