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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간다]“죽음으로 탄원합니다”…전세사기 전 국가대표의 마지막 바람
2023-06-02 14:36 사회

 전세사기 피해자의 아파트



특별법 통과를 하루 앞둔 지난달 24일, 다섯 번째 전세사기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채널A가 전세사기를 처음으로 보도한지 벌써 10개월이 지났지만, 현실의 무게는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습니다. 희생자들의 유족도 힘겨운 건 마찬가지. 유족들은 저마다 고인을 떠나보낼 시간이 필요하다며 인터뷰를 부담스러워 하셨고, 채널A도 그 점을 존중해 그간 별도의 인터뷰 요청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섯 번째 희생자가 나온 바로 그날 밤, 한 유족이 인터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말이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바로 지난달 전세사기 피해자 중 세 번째로 사망했던 전 육상 국가대표 선 수 박모 씨의 여동생이었습니다.

박 씨의 동생을 만나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녀의 집 거실 벽면엔 언니와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이 붙어있었고, 책장 위엔 언니의 영정 사진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사진 속 언니와 많이 닮은 동생은 이날 처음으로 언니의 친필 유서를 공개했습니다. 이번 <현장, 간다>는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박 씨의 이야기와 유서의 일부분을 다루고자 합니다.

"꿈 많았던 언니…전세사기로 한순간에 무너져"


 인터뷰에 나선 전세사기 피해자 박 씨의 동생


박 씨가 사망한 4월 17일. 이날 오전도 여느 때와 같이 언니와 통화를 했다고 합니다. 박 씨는 인천, 여동생은 부산에 살았지만 어릴 적부터 의지하며 커온 그들은 매일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챙겼습니다. 항상 알뜰살뜰 동생을 챙겨왔던 박 씨는 전세사기 이후 연락이 뜸해졌습니다. 언니가 걱정된 동생이 먼저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는 항상 전화 오면 그게 궁금하니까 '어떻게 돼 가냐' 이렇게 물어보면, 그것도 좀 스트레스 받았던 거 같아요. 계속 그 얘기를 하는 게. 계속 전화로 '힘들다'고 하고 영상 통화해도 '힘들다, 잘 모르겠다.' 나중에는 점점 더 연락도 안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계속 연락을 했는데…" - 숨진 박 씨의 동생

목소리에 힘은 없었지만, 5월엔 조카와 함께 만나기로 약속까지 잡았습니다.

"그렇게 됐던 날… 몇 시간 전에도 저랑 전세 사기 얘기를 했었거든요. 많이 지쳤었는지 '잘 모르겠다, 어떻게 되겠지' 이렇게만 얘기하더라고요. 몸살이 좀 있다고 아프다고 해서 약 먹으라고 하고, 조카 보여 달라고 영상통화 와서 아이랑 인사하고. 원래 5월 1일에 저희 집에 오기로 약속했었거든요. 그래서 끊을 때까지도 '5월 1일에 이모랑 만나' 이렇게 얘기하면서 끊었는데…" - 숨진 박 씨의 동생

그렇게 전화를 끊은 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조카와의 만남까지 기약했던 그녀는 왜 세상을 떠나야 했을까.

 전세사기 피해자 박 씨의 가족사진


어린 시절부터 육상 선수로 활동한 박 씨는 촉망받는 기대주였습니다. 나가는 대회마다 메달을 휩쓸었고, 광저우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했습니다.

"언니가 스무 살 때부터 돈을 벌기 시작했거든요. 실업팀에 들어가서 돈을 벌었는데, 성적이 좋아서 1등도 많이 했고 메달도 많이 땄고 국가대표도 했었고." - 숨진 박 씨의 동생


이후 그녀에겐 새로운 꿈이 생겼습니다. 바로 애견미용사였습니다.

"성실하고, 열심히 살고, 하고 싶은 게 되게 많았어요, 언니가. 맨날 뭐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애견 미용을 원래 하고 싶어 해서 자격증도 땄었는데 집이 이렇게 되면서 돈을 빨리 벌어야 하니까 애견 미용은 잠시 접고 물류센터에 가서 일하고. 그때부터 힘들어했어요." -숨진 박 씨의 동생

자격증을 따고 애견 미용사 준비까지 했던 그녀의 꿈이 순식간에 엎어진 건 그녀가 평생 땀 흘리며 번 돈 9,000만 원을 잃게 되면서였습니다. 첫 전세 보증금은 7,500만 원. 임대인은 이후 1,500만 원을 더 올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집주인이 갑자기 돈을 올려달라고 해서 지금 이것 때문에 큰일이라고 하더라고요. 갑자기 1,500만 원을 올려달라고 해서 언니가 이사를 가야 할지 아니면 보증금을 올리고 그냥 계속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때 언니가 한창 돈 구한다고 막 그랬었거든요." -숨진 박 씨의 동생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약간의 대출을 받아 마련한 1,500만 원. 하지만 이 한차례의 재계약은 곧 박 씨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보증금이 8,000만 원을 넘기는 바람에 최우선 변제금마저 받을 수 없게 된 겁니다. 박 씨가 그간 느꼈을 좌절감과 스트레스는 이날 여동생이 처음으로 공개한 유서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피해자 유서 공개…"죽음으로 탄원합니다"

 유족이 처음으로 공개한 박 씨의 친필 유서

"제발 더 많은 죽음이 생기기 전에 해결해 주십시오. 활동도 못 하며 생계만 이어갔지만, 또래의 죽음을 보며 저도 죽음으로 탄원합니다." - 전세사기 피해자 박 씨의 유서 중

타인에 대한 공감력이 높았던 박 씨. 동생은 또래들의 죽음이 언니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더 많은 죽음이 생기기 전 이 사태가 해결되길 바라며 어렵게 내린 결단이었을 겁니다.

"언니는 아마 이걸 썼을 때... 자기도 이제 그런 선택을 하기가 쉽지 않았겠죠. 그런데 그만큼 많이 힘들었던 거고, 저렇게 글을 썼다는 건 자기가 이렇게 가는 게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이랑 어떻게라도 해결을 좀 해줘라 이런 마음이었던 거 같아요." - 숨진 박 씨의 동생

이런 박 씨의 마지막 바람에도, 이후 두 명의 전세사기 피해자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두 홀로 사는 1인 가구였습니다. 이제 피해자들은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며, 또 다른 희생이 언제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더 많은 죽음이 생기기 전 해결해달라"는 박 씨의 바람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뉴스A의 코너, ‘현장카메라’와 ‘다시간다’에 담지 못한 취재 뒷이야기를 풀어냅니다.  


▷ [다시 간다]‘전세사기’ 악몽의 10개월…못 떠나는 사람들 <뉴스A, 지난달 30일> 
[기사 링크
: https://www.ichannela.com/news/main/news_detailPage.do?publishId=0000003503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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