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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빼먹은 배달원, 처벌은 못 한다고요? [팩트맨 A/S]
2019-11-13 08:30 사회

최근 온라인상에 뜨거운 논쟁거리 된 한 편의 이야기를 재구성해보겠습니다. 배달 대행업체를 통해 '00 치킨‘에서 치킨 한 마리를 시킨 A씨. 치킨이 배달되자마자 기쁜 마음으로 포장을 뜯었는데요. 세상에 닭 가슴살에선 한 입 가득 물어뜯은 자국이 있었고, 두 개가 있어야 하는 닭다리는 덜렁 한 개만 놓여 있었습니다. 화가 난 A씨는 ’00 치킨‘에 전화해 주인 B씨에 따졌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닭목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넣었다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음식점 주인 B씨의 항변. A씨는 답답한 마음에 주차장 CCTV를 확인했다가 배달원이 포장을 뜯고 닭다리를 쏙쏙 빼먹는 ‘치킨 먹방’을 목격하게 됩니다. 내 배달 음식을 몰래 먹고 오리발 아니 닭발을 내밀고 있는 이 괘씸한 배달원 법적 처벌이 가능할까요?

V '배달 중 없어진 음식', 소유권은 누구에게?
법적 책임을 따지기 위해 가장 먼저 가려져야 할 건 배달시킨 치킨의 법적 소유권입니다. 물론 가장 억울한 사람은 치킨을 주문한 뒤 두근대는 마음으로 음식을 기다렸을 주문자 A씨겠죠. 하지만 A씨가 이 음식을 받기 전까지 치킨의 소유권은 치킨집 주인 B씨에 있습니다. 어플리케이션으로 음식 값을 먼저 지불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현직 판사는 “우리나라 현행법은 음식과 같은 일반적인 물건이라도 배달음식을 주문자에게 인도 해야만 소유권이 넘어간 것으로 본다”고 했는데요. 그러니까 배달 과정에서 없어진 치킨의 행방을 물을 수 있는 직접적인 피해자는 소비자 A씨가 아닌 치킨집 주인 B씨가 되는 셈입니다.


따라서 음식물 빼먹기 피해에 대한 ‘고소’의 주체는 소비자가 아닌 음식점주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만약 음식점 주인이 법적 처벌을 원하지 않은 상황이고 이 문제를 어떻게든 법적으로 해결하고 싶다면 소비자가 직접 배달원을 형사 ‘고발’할 수 있기는 합니다. (다만 이럴 경우 고발의 주체인 소비자가 배달원이 음식물을 빼먹었다는 증거(CCTV나 목격자)를 직접 확보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V 음식 빼먹기, 절도죄? vs 횡령죄?
자 이제 음식점 주인의 상황으로 가보겠습니다. 분노 가득한 소비자 A씨의 전화를 받은 치킨집 주인 B씨, 일단 급하게 법전을 뒤적여 보는데 언뜻 떠오르는 건 타인의 재물을 절취하는 '절도죄'입니다. 하지만 팩트맨이 법조계 인사들에게 확인해보니 음식을 훔쳐 먹는 행위는 절도라기보다 '업무상 횡령죄'에 가깝다는 분석이 많았는데요. 김태민 식품전문변호사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불법적으로 가로채는 행위기 때문에 치킨 배달원이 치킨을 가로챈 건 우리 형법에서 업무상 횡령죄에 해당"한다고 말했습니다. 음식점에 직접 고용된 배달원이든, 배달 대행업체 기사이든 음식점주 소유의 음식물을 보관·위탁받은 자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형법상 업무상 횡령죄는 ‘징역 10년 이하나 벌금 3천만 원 이하’의 형에 처하도록 돼 있는데요. ‘6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 1천만 원 이하’의 절도죄에 비해 처벌 강도가 훨씬 더 무겁습니다.

V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신고'?
그럼 왜 실제로 배달원이 ‘업무상횡령죄’로 처벌받는 사례는 없을까요. 온라인 커뮤니티에 잦은 배달 피해 업체로 소개된 한 도넛가게에 직접 전화해 물어봤습니다.


[팩트맨]
"인터넷에서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왜 신고 안하세요?"

[피해 점주]
”(배달원이) 소리소리 지르고. 직원들을 특정한 사람들 뽑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괜히 소리 높이면 장사만 힘들고, 다 끌어안고 갑니다. 그냥."

사실 이 점주는 “솔직한 마음으로는 배달 서비스를 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는데요. 프랜차이즈 업체이기 때문에 배달 서비스 대열에 동참하고는 있는데, 오히려 이런 저런 피해와 민원이 쏟아져서 배달을 통해 얻는 ‘득’보다 ‘실’이 더 크다는 겁니다. 특히 배달기사들에게 문제를 제기하면 오히려 큰 소리를 지르거나 “본인을 의심하냐”는 답변이 돌아와 함부로 문제제기할 수도 없다고도 했습니다.

배달 대행업체의 배달 기사들이 점주의 추궁에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요? 배달 기사들은 아직까지는(최근 노동청에서 ‘요기요’ 배달원을 근로자 지위를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고용된 근로자가 아니라 계약을 체결한 프리랜서 즉 개인 사업자이기 때문에 따로 회사로부터 징계를 받을 위험도 없는데요. 외려 배달원이 음식을 훔쳤다고 의심할 경우 ‘집단적 배달 거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속앓이만 하고 있는 겁니다. 무엇보다 자영업자들에게 배달 음식 일부가 없어졌다고 해서 변호사를 고용해 법적 대응까지 하는 일,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일입니다. 따라서 배달원들의 ‘배달 거부’에 직면하느니 “몇 천 원 물어주고 말자”는 점주들이 더 많은 게 사실입니다.

V '식품위생법' 위반인데도 손 놓은 식약처?
그러면 식품 위생에 대한 관리·감독을 맡은 식약처에 신고하면 되는 것 아닐까요? 팩트맨이 식약처에 물어보니, 식약처 측은 “음식 배달 업자는 위생 관리 책임을 지는 사업주가 아니기 때문에 조사 대상이 될 수 없고, 실제로 음식이 오염되거나 훼손된 사례에 대한 신고가 없어 검토가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식품위생법 3조에는 "누구든지 판매를 목적으로 식품 또는 식품첨가물을 운반 또는 진열을 할 때에는 깨끗하고 위생적으로 하여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즉, 배달원 역시 운반을 위생적으로 하여야 하는 ‘누구든’에 포함되기 때문에 해당 조항을 어길 경우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이 조항을 확인하고 다시 따지자 그제야 식약처는 “검토 결과 배달되어야 할 음식물을 오염된 손으로 만지거나 훼손하는 행위 또한 식품위생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비위생적인 행위’에 대한 입증이 충분히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식약처 측은 덧붙였습니다. 결국 이번에도 증거나 목격자를 확보해야 하는 어려움이 그대로 남습니다.

V 다수 선량한 배달원도 피해자…'자구책'이 최선?
팩트맨 역시 배달 어플리케이션 애용자인데요. 단 한번도 '비양심 배달원'은 만난 적이 없습니다. 사실 배달 기사 절대 다수는 선량하게 정해진 배달 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오히려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비양심적인 배달원 때문에 뜻하지 않은 오해를 받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서로에 대한 불신과 오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밀봉 스티커'를 붙이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몇몇 업체의 경우 밀봉 스티커를 제공하고 있는데요.


문제는 이 밀봉 스티커 비용을 일부 얌체 업자들이 소비자에게 전가해서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스티커 제작비용을 업체에 문의한 결과 1장당 13원 꼴인데 일부 가게는 소비자에게 300~500원 사이의 추가 비용을 받고 있는데요. ‘음식물 빼먹기 피해’를 입는 소비자가 그 비용까지 부담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소비자, 가게 주인, 배달원들이 서로 오해 없이 믿고 음식을 주문하기 위한 ‘신뢰 비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입니다.

※팩트맨 A/S란?
국내 유일 ‘1분 40초’ 팩트체크 코너 <팩트맨>에 다 담지 못한 뒷이야기도 함께 전해드리는 연재물입니다. 주요 쟁점에 대한 법리적 판단을 주로 전해드리는데, 방송 코너 안에 미처 다 담지 못한 사실 관계에 대한 법적 쟁점과 전문가들의 의견들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코너에 대한 비판과 지적은 물론, 아이템 제보도 환영합니다.

팩트맨 성혜란 기자 saint@donga.com

본편 보러가기▶ [팩트맨] 배달원 음식 빼먹기…‘횡령죄’ 처벌 가능?  https://www.youtube.com/watch?v=JqSzOZqil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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