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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LIVE]‘야구 전설’ 이만수, 출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18-11-23 11:42 뉴스A 라이브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포수입니다. 수많은 1위 기록들을 보유한 최초의 사나이 SK 감독을 지냈던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 직접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만수> 안녕하세요

질문> 이번에 한국시리즈 이제 야구인으로서 보셨을 텐데 SK가 우승했더라고요. 어떻게 보셨어요?

이만수> 6차전에서 13회까지 가는 접전 속에서 이제 한동민 선수가 극적인 끝내기 홈런을 치는 바람에 SK와이번스가 우승하게 됐습니다. 사실 제가 감독 생활할 때 많은 팬들한테 저조한 성적 때문에 야유도 많이 받고 그랬는데 이번에 SK와이번스 우승하는 바람에 현장엔 없었지만, 대리만족을 하게 되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질문> 이제 이만수 감독님하면 늘 항상 붙어 다니는 별명이 있잖아요. 바로 헐크잖아요. 헐크라는 별명 어떠세요?

이만수> 저는 헐크라는 별명이 참 좋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1982년도에 프로야구 처음 참관할 때 그때 이제 방송에서 아주 드라마가 유명했던 것이 <헐크>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어린아이들이 드라마를 보고 흉내도 내고 그랬는데 제가 삼성라이온즈 포수할 때 경기할 때마다 그 당시에는 소리 지르고 막 그랬어요. 두 손을 벌리면서 화이팅 이러다 보니까 어린아이들이 저 장면을 보고 '어 저 아저씨 헐크다' 그랬던 것이 그때부터 별명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질문> 그래서 그런지 이제 이만수 감독님께서 새로운 재단을 지었는데 그것도 헐크파운데이션 지금 그리고 이사장님이시더라고요.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곳인가요?

이만수> 처음에 제가 저의 이름을 대고서 재단을 만들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제가 야구를 50년 하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한테 헐크라는 별명이 많은 사람들 뇌리에 박혀있기 때문에 '헐크파운데이션으로 하자 재단을 만들어서'. 이걸 어떻게 시작하게 됐냐면 라오스에 건너가서 야구를 보급하다 보니까 재정적으로 너무 많이 힘듭니다. 제가 지금까지 벌어놨던 것을 다 나눠주다 보니까 '아 이제는 혼자 할 수 없구나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해야겠구나' 그리고 이제 라오스뿐만 아니라 국내에 많은 어려운 학생들 그다음에 어려운 학교에다가 장학금이나 물품도 지원하고 그래서 재단을 만들게 됐습니다.

질문> 조금 전에 라오스 말씀을 해주셨는데 사실 아시안게임 때 라오스 야구를 이끌면서 많이 또 화제가 됐었잖아요. 그런데 라오스에서 이만수 감독님이 아짠이라고 불린다는데 무슨 뜻인가요?

이만수> 아짠이라는 것은 우리나라 말로 한다면 선생님. 그래서 학생들이 어린 학생들이 저를 안으면서 아짬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어요. 그래서 그 학생들 위해서라도 제가 50년 동안 야구했던 것을 조금이나마 나눠줘야 되겠다 해서 제가 라오스에 1년에 4번 정도 계절마다 들어가게 됩니다. 한 번씩 들어갈 때마다 열흘 정도씩 들어가는데 길게는 한 달 정도도 있고 그럽니다. 그래서 지금도 라오스에 있는 학생들한테도 전화가 옵니다.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도 그 학생들하고 야구할 때가 그렇게 행복합니다.

질문> 감독님 라오스 유니폼을 봤더니 역시나 22번을 달고 있었는데 이게 현역시절부터 달던 번호잖아요. 22라는 숫자 특별한 인연이 있는 건가요?

이만수> 제가 중학교부터 야구 시작하고 나서 제가 주전으로 중학교 3학년 때 뛸 때부터 22번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계속 고등학교 들어가고 그다음에 대학교 들어가서 프로까지 22번을 계속 고집하면서 달고 있었습니다.

질문> 사실 이만수 감독님의 한 장면이라고 하면 2007년 5월에 당연히 기억하시겠지만, 야구장에서 상의 탈의 퍼포먼스 한 걸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는데 사실 아시안게임 때 라오스 한번 이기면 상의 탈의 퍼포먼스하겠다 했는데 아쉽게도 못 봤어요.

이만수> 2007년도 5월 26일입니다 그때가 저는 미국에서 거의 10년 동안 지도자 생활을 하다가 한국에 들어와 보니까 관중이 없더라고요. 문학경기장에 3만 3천 명이 들어가는데 거기에 평균 관중이 5천 명 밖에 안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러면 안 된다. 프로야구는 관중이 없으면 존재할 가치가 없다' 해서 농담으로 얘기했습니다. 농담으로 선수한테 문학경기장이 만원이 되면 내가 팬티만 입고 한 바퀴 뛰겠다 했는데 듣고 있던 옆에 있던 코치가 공중파에서 그대로 이야기하는 바람에 이게 일파만파로 전국적으로 퍼져가지고 제가 이제 결국 팬티만 입고 한 바퀴 돌게 됐습니다. 근데 그걸 한 바퀴 돌았는데 이게 세계 이슈가 됐습니다. 그랬는데 라오스도 벌써 알고 있었습니다. 정부나 그 다음에 선수들이 알고 있어가지고 라오스가 1승만 하게 되면 팬티만 입고 라오스 수도가 비엔티엔입니다. 거기서 한 바퀴 뛸 수 있냐 그래서 제가 뛴다고 얘기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선수들한테 야구한지 4년밖에 안 됐기 때문에 동기부여도 주고 싶고 또 아시아 대회 때문에 선수들이 많이 긴장도 하고 그럽니다. 그래서 긴장도 풀 겸 해서 너희들이 1승만 하게 된다면 내가 팬티입고 라오스 수도인 비엔티엔에서 한번 뛰겠다 했는데 아직 1승 못했습니다.

질문> 아직도 꿈을 꾸고 계시다고 그러더라고요. 앞으로의 꿈을 소개를 해주시죠.

이만수> 제가 라오스에 건너가서 야구장을 4면을 짓는 것이 마지막 꿈이고 그다음에 제가 라오스가 다섯 나라가 있습니다. 그걸 인도차이나 반도라고 합니다. 처음에 인도차이나 반도 안에서 게임을 열고 그다음에 아시아대회 그다음에 세계적인 경기를 하는 것이 저의 마지막 꿈입니다. 물론 저는 못 보고 갈 겁니다. 저는 야구인으로서 주춧돌만 놔주고 갈 뿐입니다. 뒤에 오는 후배들이 반드시 저의 꿈을 이루어줄 것을 저는 믿습니다.

알겠습니다,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이죠. 이제는 야구를 통해 꿈과 희망을 주고 있는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님과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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