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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깊은뉴스]“죽어도 못 버려”…위험한 방치
2017-06-27 19:49 뉴스A

집안에 갖가지 잡동사니를 산처럼 쌓아놓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증상을 '저장강박증'이라고 하는데요, 자기 자신뿐 아니라 이웃에게 큰 피해를 줍니다.

알고보면 매우 중한 정신질환이지만 기본적인 실태조사 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최주현 기자가 집중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평범한 주택가 한 가운데에 온갖 잡동사니가 쌓여있습니다.

[최주현 기자]
"사람들이 다니는 길목인데,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무너져 내릴 것처럼 위험한 모습입니다."

이미 3년 전 재난위험시설로 지정된 이 집에는 81살 남성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웃 주민]
“(집주인이) 개인택시를 하는데 나가면 주워 오기도하고, 사가지고 오기도 하고 그래서 이렇게 모아지는 것이에요”

집주인의 개인택시 안에는 각종 쓰레기가 가득하고 계기판에도 물건이 놓여져 있습니다.

그때, 나타난 집주인 김모 씨.

[김모 씨 / 집주인]
“(주변 주민들이 집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시던데요) 떨어져서 위험하다고 하는데, 40년 동안 아무 일 없었어요.”

일을 나가는 김씨를 따라가 봤습니다.

그러나 보통 택시 기사처럼 손님을 태우고 내려줍니다.

다음날 다시 만난 김씨.

[김모 씨 / 집주인]
“참나 시끄럽게, 뭘 그렇게 궁금해 해요. (아버님이 물건을 많이 쌓아놓으시니까) 쌓아놓는 것이 어때서…아 됐어, 시끄러워, 정말. 오지 말아요.“

쌓여있는 물건은 개인재산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치울 수도 없습니다.

[손용국 / 용산구청 건축 관리팀장]
"우리 구청이야 조치를 하고 싶은데, 건물주가 답변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없고, 기다릴 수 밖에 없고, 계속 행정지도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물건을 모으는 정신질환 저장강박증.

저장강박증 환자 규모는 정확치 않지만, 전국 임대 주택 25만 가구만 따져도 거의 3백 가구가 저장강박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엔 70대 노모가 쌓아놓은 쓰레기 더미가 무너지면서 40대 아들이 숨지는 사고까지 났습니다.

[최주현 기자]
“압사 사고가 발생한 주택의 모습입니다. 주변은 물론이고, 담장 밖으로 넘쳐 나올 정도로 쌓인 쓰레기가 사람을 덮쳐서 발생한 사고인데, 결국 압사 신고를 받고 온 경찰과 구급대도 문을 제때 열지 못하면서 안타까운 사고로 이어졌습니다.”

노모는 이미 오래 전부터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이웃 주민]
“한 15년 됐겠지, 20년? (냄새는 안나셨어요?) 냄새 여름에는 다 싫어하지”

지난 1월 경남 창원에서는 30대 여성과 어린 두 아들이 사는 집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김아진 경사 / 창원 중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쓰레기가 입구부터 방까지 쌓여 있었는데, 중간에서 셋이 주무신 거에요. 추우니까 촛불을 켜놓고 주무셨더라고요.“

8살과 11살 아이들은 사실상 학대를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집주인]
“쓰레기 위에 자식을 이불도 안덮고, 재우는게 학대 아닙니까. 여덟 차인가 아홉 차를 실었어요, 쓰레기를…”

아이들은 현재 엄마와 떨어져 보육시설로 보내진 상태.

[보육 교사]
“(학교에서) 조금 아이가 불안정한 것 같다’고 수업 시간에 갑자기 고함을 ‘악’ 지르고, 아니면 노래를 갑자기 부른다든지…“

[조철현 /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어린 아이들은 신체적으로 어른에 비해서는 면역 체계나 발달상황이 부족하기 때문에 정서적인 부분은 악영향이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간신히 연락이 닿은 이씨

이혼한 전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 저장강박증세를 앓게 됐다고 털어놨습니다.

[이모 씨]
“가정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도 있고요. 그래서 못 치우게 된 것이지. 제가 원해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고…"

전문가들은 폭력이나 가정 붕괴, 사업실패 같은 충격적인 경험이 많을수록 저장강박증세가 쉽게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반복적인 손 씻기나 숫자세기 같은 통상적인 강박장애가 전두엽에서 대뇌 기저핵으로 가는 신경에서만 문제가 생기는 것과 달리, 저장강박증은 뇌의 다른 부분에서도 동시 다발적으로 문제가 발생합니다.

주변에 막대한 피해를 주기 때문에 중증정신질환으로 분류해야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권준수 /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저장강박증은 굉장히 심각한 질환이고, 정부에서 이런 분들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빨리 치료 받을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들고…."

하지만 매년 시행되는 실태조사에서 저장강박증 환자는 파악되지 않습니다.

[복지부 관계자]
"굳이 그것(저장강박증)까지 데이터를 내길 기대하지 않는 것이죠. 저장강박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없기 때문에…"

약물과 행동 치료를 하면 크게 호전될 수 있는 저장강박증.

지금도 사회적 무관심 속에 '조금 불편한 이웃' 정도로 취급받으며 위험 속에 살고 있습니다.

채널A 뉴스 최주현입니다.

최주현 기자(choigo@donga.com)


연 출 : 김지희 최승희
구 성 : 전다정 장윤경
그래픽 : 김민수 양다은
영상취재 : 한효준 정기섭 김덕룡 김명철 박찬기 추진엽 조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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