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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 ‘톡’]수사 대장은 말이 없었다
2018-05-02 16:52 기자페이지
“방송국이다. 카메라 엄청 많이 왔어!”

굳게 닫힌 초등학교 철문에는 불과 몇 분전 상황이 끝난 인질극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듯 했습니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한기가 느껴지는 쇳빛 철문 너머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학교 관계자들의 얼굴에도 당혹스러움이 역력했습니다. 철문 밖에서 천진난만하게 방송국 카메라를 보고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더욱 대비되어 느껴진 이유입니다.

소식을 듣고 놀란 가슴에 일터에서 달려온 부모들이 내 아이의 무사함을 확인하곤 얼싸안고 스스로 마음을 진정시킵니다. 할 말도 많고 따질 말도 많지만 많은 것을 참고 돌아서는 분위기였습니다. 지난 2일, 강남 한복판에 있는 초등학교 교무실에서 벌어진 인질극 당시 눈에 담아뒀던 취재 현장 풍경입니다.

“다른 건 다 적혀있는데 그 사람에 대한 것만 적혀있지 않아요. 저희가 난감한 상황입니다.”

몇 시간 만에 나타난 교장은 정리한 상황을 설명하며 학교 보안관 이야기를 꺼냅니다. 일단 인질극을 벌어진 일에 대해 학교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지만 남성이 학교 안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학교 보안관이 출입자에 대한 기록을 작성하지 않았단 이야기도 덧붙인 것입니다. 학교는 최선을 다했단 이야기 중에 유독 잘못된 부분에 대한 이야기로 학교 보안관만 ‘콕’ 집어 거론되니 비난의 화살이 향할 곳이 눈에 훤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현장을 떠날 때가지 교장 교감은 입이 있었지만 학교 보안관은 말이 없었습니다.

얼마 전 사건 당시 그렇게 말이 없던 학교 보안관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한 인터뷰 한 기사를 봤습니다. 출입 기록부 작성을 못한 것은 자신의 잘못이고 책임을 져야한다면 지겠지만 모든 비난의 화살이 본인에게 향하는 것이 억울하단 것이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현장에 뛰어든 기자에게 ‘입이 있는 사람’ 이상으로 ‘말이 없는 사람’을 설득하는 일이 왜 값진 일인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힘이 없고 권한이 없단 이유로 누군가 무작정 억울한 ‘독박’을 쓰지 않도록 하는 게 언론의 사명 가운데 하나라면 말이죠.

20일 가까이 지난 지금, 세상이 ‘드루킹’이란 사람의 댓글 여론 조작 사건으로 시끄럽습니다. 경찰의 ‘부실수사’ ‘늑장수사’ ‘거짓말 논란’ 등이 사건의 의문과 관심을 더욱 증폭시켰습니다. 경찰은 당초 ‘드루킹’이 보넨 메시지에 대해 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의례적인 인사성 답변만 했다고 발표했다가 홍역을 치렀습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김 의원이 ‘드루킹’에게 온라인 기사 URL을 보넨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죠. 사건은 명명백백한 수사를 통해 가려져야 할 부분입니다.

다만, ‘경찰 거짓말 논란’에 대해 서울 경찰의 수장이 했던 답변은 또 한번 ‘입이 있는 사람’과 ‘말이 없는 사람’을 떠올리게 합니다. 거짓말 논란에 직접 기자실을 찾은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경위를 떠나 최종 책임자이자 지휘관인 저의 불찰”이라면서도 “사이버 수사대장이 저에게 잘못 보고한 것이란 걸 나중에 알게 됐다”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입이 있었고 수사대장은 말이 없습니다.

조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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