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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간다]영동스낵카를 아시나요?…미래 없는 서울미래유산
2023-02-26 13:53 사회

 경기 여주시 공터에 방치된 영동스낵카

지난해 여름 을지로가 시끌벅적했습니다. ‘힙지로’를 대표하는 노가리 포차의 원조, <을지OB베어>가 사라진 건데요. 가게 앞에 붙어 있던 ‘서울미래유산’ 현판이 떼어지는 걸 보고 의문이 들었습니다. 남길 유(遺), 남겨야 의미가 있는 건데 지킬 수는 없었나? 그러다 올해 초 또 같은 현판을 폐업한 목욕탕 <원삼탕>에서 보았습니다. 경영난 때문에 문을 닫아야 했던 사장 진중길 씨는 “서울미래유산은 소용이 없었다”며 혀를 찼습니다.

푸드트럭의 원조…영동스낵카



 경기 여주시 공터에 방치된 영동스낵카

서울의 유산 중 미래 세대를 위해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합니다. 그런데 취재진은 서울미래유산을 만나러 서울 광화문에서 2시간 가량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려야 했습니다. 도착한 곳은 경기 여주시의 공터,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수풀이 우거진 곳에 서울미래유산, <영동스낵카>가 있었습니다. 사장 박윤규 씨는 “영동스낵카는 나의 청춘”이라며 “지금 모습을 보고 있으면 황망하다”고 했습니다.

1972년 이동식 식당으로 문을 연 <영동스낵카>. 푸드트럭의 원조로 꼽힙니다. 여의도 개발이 진행되던 때, 식당 하나 없는 허허벌판 여의도에서 개발 현장 노동자들이 끼니를 때울 수 있었던 건 영동스낵카 덕분이었습니다. 영동스낵카는 그 뒤로 자리를 옮겨 2020년 3월까지 서울 강남구 한티역 8번 출구 인근에서 김밥, 우동을 팔며 영업을 이어왔습니다.

“30년 가까이 하루도 안 쉬고 영업했어요. 주로 택시기사님들이 많이 이용을 했어요. ‘영동스낵카 없으면 어디 가서 밥 먹고 쉬나 걱정이다’ 이야기했었는데….” -박윤규 씨

 지난 2015년 영업을 하던 영동스낵카의 모습

2015년 서울시는 <영동스낵카>를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했습니다. 하지만 영업하던 공간에 빌딩이 들어서면서 미래유산 선정 5년 만에 갈 곳을 잃게 됐습니다. 박 씨는 미래유산이니까 보존을 해주겠지, 기대를 했습니다. 서울시에서 수리 지원금 2천만 원을 받아 버스 보수도 했습니다. 서울시에 무료 기증을 하겠다 했지만 “검토 결과 둘 장소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결국 정비소에 1년 맡겼다가 지금의 허허벌판으로 옮겨졌습니다.

“농담으로 지인들한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나 이거 서울시 광장에 끌어다가 알아서 처리하라 하겠다고. 미래유산으로 등재할 때는 그렇게 가치가 있다 하더니 나몰라라 하니까. 노동자들 배고픔을 달래준 영동스낵카를 시민들이 기억해줬으면 하는 거죠.” -박윤규 씨

사라진 을지로 노가리 골목

다시 을지로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골목 입구엔 ‘서울미래유산’라는 간판이 붙어있습니다. 하지만 그 뒤론 재개발 공사가 한창입니다. 1989년부터 34년 간 자리를 지킨 <뮌헨호프>는 공사 가림판으로 가려져 있고, 그 자리엔“뮌헨호프 이전”이라고 쓰인 현수막만 걸려 있었습니다.

 공사 중인 을지로 노가리 골목

“결과적으로 재개발이 확정되고 우리도 작년 10월 말까지 영업하고 쫓겨난 거죠. 미래유산으로 지정해줬으면 그대로 보존‧유지를 해야 하는데 아무런 보호 대책이 없어요. 하루아침에 간판 떼버리고.” -뮌헨호프 사장 정규호 씨

서울시는 골목 전체를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지만 터줏대감 노릇을 해온 가게 12곳이 문을 닫거나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노가리 골목’은 사라진 겁니다.

“일이 힘들 때 노가리 골목 가서 맥주 한 잔씩 하자 그러면 정말 부담 없거든요. 보물 같은 곳이었는데…. 보호해주지 못한다면 왜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는지 모르겠어요.” -<을지OB베어> 단골 손님 장인주 씨

“소유주 개인이 관리해야”

 서울어린이대공원 ‘청룡열차’의 모습. 지금은 방수포에 덮여 있다.

 서울어린이대공원 ‘청룡열차’의 모습. 지금은 방수포에 덮여 있다.

우리나라에서 ‘롤러코스터’하면 떠오르던 청룡열차. 서울어린이대공원 개장과 함께 운행을 시작한 국내 최초의 롤러코스터였는데요. 마찬가지로 서울시가 미래유산으로 지정했지만 지금은 파란 방수포에 덮인 채 공원 한 켠에 방치돼 있습니다.

지금까지 569개가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고 그 중 24개가 폐업으로 사라졌습니다. <영동스낵카>와 <을지로 노가리 골목>, <청룡열차> 등은 아직까지 서울미래유산에 포함돼 있습니다.

서울시도 문화유산이 사라지는 안타까움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다만, 법적으로 보호받는 문화재와 다르게, 문화유산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켜내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 시민이 누구냐 묻자, 서울시는 “소유주 본인”이라고 답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100년 후 보물을 준비합니다.”라던 서울시의 서울미래유산 소개글이 공허하게 들립니다.

*뉴스A의 코너, ‘현장카메라’와 ‘다시간다’에 담지 못한 취재 뒷이야기를 풀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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