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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아픔 견뎠다…인간 이건희 ‘78년 인생’
2020-10-25 12:31 사회

기업인 이건희가 삼성을 키워내며 승승장구했다면,

인간 이건희의 인생엔 외로움과 아픔도 적지 않았습니다.

인간 이건희의 '78년 인생'을 김철중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어린 소년 이건희의 얼굴엔 장난끼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사진 속 표정과는 달리 이 회장은 어린 시절, 외로움과 싸워야 했습니다.

1942년 이 회장은 태어나자마자 고향인 대구를 떠나 경남 의령군에 있는 할머니의 손에 맡겨졌습니다.

선대 이병철 회장 부부가 사업을 키우느라 너무 바빴기 때문입니다.

3년 뒤까지 이 회장은 할머니를 어머니로 알고 자랐습니다.

5살 때 서울로 이사 오고 나서도 외로움은 계속됐습니다.

초등학교 때 마산 대구 부산으로 5번이나 전학을 다녔고,

5학년 때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일본으로 떠나 외로운 유학 생활을 했습니다.

이 회장 스스로 "나면서부터 떨어져 사는 게 버릇이 됐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이 회장의 유별난 반려견 사랑도 이때의 외로움을 극복하다 생긴 겁니다.

이 회장은 "혼자 있다 보니 개가 좋은 친구가 됐고 사람과 동물 간에도 심적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고 회상했습니다.

중고등학생 시절 이 회장은 럭비와 레슬링을 즐기며 친구들과 어울리는 활발한 학생이었습니다.

이때의 경험은 체육계 활동으로 이어집니다.

1982년 대한아마추어레슬링협회장을 맡았고 1996년 아이오시(IOC) 위원에 올랐습니다.

2011년 삼수 끝에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이끌어 내는 영광의 순간도 경험합니다.

경영자로서는 대체로 승승장구했지만, 가족 관계에선 풍파가 많았습니다.

맏형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과는 2012년 상속재산을 놓고 법정 다툼을 벌였습니다.

아버지인 이병철 회장의 상속 재산을 두고 이맹희 전 회장과 누나인 이숙희 씨가 잇따라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당시 이 회장은 격앙된 목소리로 형을 비난했습니다.

[고 이건희 회장 / 2012년 4월]
"이맹희 씨는 감히 나보고 '건희, 건희' 할 상대가 아니에요. 날 쳐다볼 때, 바로 내 얼굴을 못 보던 양반이라고… . 지금도 그럴 거에요."

미국에 유학 중이던 막내딸 윤형 씨가 2005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자식을 잃는 아픔도 겪습니다.

외로운 소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남은 이건희 회장.

영광과 외로움, 고통과 환희가 교차했던 그의 삶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습니다.

채널A 뉴스 김철중 입니다.

영상편집
손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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