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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다]전준영 천암함예비역전우회 회장 인터뷰[전문]
2021-03-27 20:30 사회

앵커
북한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폭침되고 만 11년하고 하루가 지났습니다. 순직 장병만 마흔 여섯 명, 그리고 살아남은 생존자 쉰 여덟 명이 여전히 우리 곁에 있습니다. 천안함 생존장병을 대표해서 오늘 전준영 씨가 나오셨습니다. 어서오십시오.

전준영
안녕하세요.

앵커
어제 기념식 하고 하루가 지났습니다. 제가 전준영씨를 뵈고 나서 꽤 오래 알았는데 가장 표정이 한결 가벼워보이는 날인 것 같아요, 그래도 오늘이. 어제 어떠셨어요?

전준영
어제 행사 같은 경우는 처음으로 2함대에서 좀 크게 준비해주셨는데요. 쭉 생각해보니까 내가 그래도 이 나라를 위해서 뭔가 희생을 했고 뭔가 인정을 받는 그런 느낌은 사실 들었습니다.

앵커
어제 기념식이 그래도 마음에 와 닿았다.

전준영
네, 좀 와닿은 부분이 많았어요.

앵커
어떤 부분에서 그랬을까요?

전준영
저희는 지금 민간인 신분이지만 항상 그 현장에 있는 군인이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 그런 부분을 많이 감정을 건드려주시고. 또 용맹한 부분, 이 분들의 희생이 결코 헛된 희생이 아니라는 걸 많이 메시지를 전달해주셔서 그 부분이 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앵커
여러 가지 이벤트라든지 기념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어떤 장면이 가장 마음에 남았어요?

전준영
저는 2023년 천안함, 딱 화면을 보고 왈칵 울었거든요.

앵커
천안함이 부활하는 모습.

전준영
네. 역사 속에 사라진 우리 천안함이 다시 부활하고 그 배에 혹시 기회가 되면 우리 승조원 중에 한 분이 또 탑승을 한다고 상상을 해보니까 뭔가 뿌듯했습니다.

앵커
순직한 동료들이 다시 살아온 것 같은 느낌도 들었을 것 같아요.

전준영
그런 것도 있고. 맨날 항상 반파돼 있는 군함을 보기만 해야 되는데 그래도 뭔가 나라를 지키는 군함으로 다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가슴이 좀 벅찼습니다.

앵커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트라우마가 다소 치유되는 그런 느낌이었다. (네.) 어떻게 보면 11주기 만에 그런 자리가 마련됐다는 게, 물론 그 전에도 행사는 있었습니다만 좀 늦었다는 느낌도 드는데 어떤가요?

전준영
밖에서는 이리저리 뭐... 사실 저희 입장에서는 모든 걸 다 만족할 수는 없어요. 욕심이 좀 과하기도 하다고 생각이 드는데. 전에도 현충원에서 슬픔을 강요받는, 거기서 안 울면 안 되게끔, 그렇게 행사를 그런 식으로 진행해주셨는데 어제 같은 경우에는 눈물 보다도 뭔가 용맹과 가슴이 막 뜨겁게 만드는 현장이었던 것 같아요.

앵커
여러 가지 인터뷰에서 패잔병이라고 손가락질 받는다,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거든요. 근데 그동안 어떻게 보면 패잔병 같은 느낌이었다면 어제만큼은 나라를 위해서 배를 탔고 희생했다는 그런 프라이드를 느꼈다고, 해석해도 될까요?

전준영
네, 맞습니다.

앵커
오늘도 저희 스튜디오에 아이들 셋을 데리고 오셨어요. 아이도 함께 했죠? 아이들 앞에 11주기 만에 자랑스런 아빠의 모습을 보여줬잖아요. 어땠나요?

전준영
우리 아이들은 항상 현충원에 가면 아빠가 우는 모습을 봤는데 아빠가 사열하는 모습도, 아 저거 봐라. 멋있지 않냐. 군인다운 용맹한 걸 해군 자체에서 잘 준비해주셔서 또 그런 부분들을 아빠가 딸 아이한테 하나하나 설명을 해줬고. 또 행사 끝나고 거기에 박보검 씨가 계셨는데, 아빠 빽 믿고 한번 따라와, 해가지고 끌고 가서 박보검 씨 저는 누구입니다, 우리 아이가 팬인데 한번 찍어주시겠습니까, 그랬더니 또 바로 찍어주시더라고요.

앵커
바꿔 얘기하면 이런 자리를 우리 사회가 진즉 한 번 마련해줬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사실 작년 같은 경우에도 코로나 때문에 행사규모가 좀 축소됐었고, 마음 아픈 일들이 좀 있었어요. 이번에도 행사 직전까지 참석자를 갖고 논란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최원일 함장님이 전역하시면서 여러 가지 목소리를 냈잖아요. 이런 목소리들이 좀 반영이 됐다고 느끼셨나요?

전준영
그래도 지휘관이시다보니까 많은 분들이 지휘관 입장에서 이야기를 듣고 싶으신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함장님들이 제복을 입고 말씀 했을 때는 별로 받아들이지 못 했던 것 같아요, 군에서도. 그런데 제복을 벗고 민간인 신분일 때 메시지를 전달할 때 되게 빨리 반응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함장님이랑 사적으로 이야기할 때 11년 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군 내에서 해도 변화가 없었는데, 28일 만에 많은 게 변했구나, 표현하시더라고요.

앵커
그래서 사실 저희가 최 함장님도 자리에 모시고 싶었는데 카메라 앞에 서시기 어려운 이유가 있으시다고요?

전준영
함장님도 아픔이 크시거든요. 제가 함장님께 가장 죄송했던 부분이 제가 힘든 것만 항상 말씀드렸지, 함장님이 아프고 힘든 점을 우리가 캐치 못 한 게 너무 죄송했더라고요. 함장님도 사람이고 어떻게 보면 지휘관이니까 깊숙이 있던 그 아픔을 전우들한테 말씀을 못 하셨어요. 그런데 그 모습을 한 번 본 적이 있던 게 있었는데, 그게 언제냐면, 제가 함장님 모시고 정신과에 한 번 동행해가지고 같이 내원을 했거든요. 그 문틈 사이에서 함장님이 상담을 잘 받고 있나, 제가 살며시 봤는데 계속 울고 계시더라고요.

앵커
지휘관으로서 항상 강인한 모습만 보셨는데.

전준영
그렇죠. 약한 모습 하나도 안 보여주셨는데, 저는 그때 함장님 진심을 느꼈거든요. 아, 함장님도 그냥 사람이고 아픈 사람인데, 항상 우리가 아프고 저도 힘든 일 있을 때 전화만 드렸지, 그런 부분은 너무 죄송스럽다. 그래서 나오시면 잘 모시고 치료할 수 있게끔 도와드릴 부분은 도와드리겠다...

앵커
저희가 질문을 드린 이유가 원래 최 함장님이 전역하시고 한 달 정도가 지나서 섭외를 하고 싶었는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이 아직도 있으셔서 카메라 앞이 좀 부담스럽다고 들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얘기는 잠시 후에 조금 더 하도록 하고요. 아무래도 최원일 함장님에 대한 존경이랄까, 신뢰랄까, 아무래도 지휘관이다보니까 그런 게 강해 보이는데, 어떻게 보면 우리 장병들이 국가에 의지를 했어야 하는데 국가를 대신해서 의지했던 부분도 많았던 거죠? 어떤 사례가 있습니까?

전준영
전우를 만나면 가족한테 말 못하고 누군가 이해를 하겠지, 하는 생각을 많이 못 하는데 항상 우리끼리는 말을 해도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것도 많고. 그걸 함장님한테 하소연을 했던 부분이고.

앵커
힘들어했던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전준영
지금도 많이 힘들어요. 예를 들어서 어제 만났는데, 좀 깊은 이야기를 두 분 정도가 했고,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손목을 딱 꺼내서 보여주시더라고요.

앵커
손목이요?

전준영
손목 그으신 걸 보여주시더라고요. 군 생활 중에 계신 분이 있는데 그걸 보고서 이걸 어떻게 도와줄 방법은 없고 이야기 들어드리는 방법밖에 없거든요. 친하신 분인데 다, 매년매년 죽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든다, 그런데 군 안에 있으니까 그걸 어디다 표출을 하실 수가 없는데 그걸 자기 몸에 자해를 하시더라고요. 그 상태로 가기까지 해군에서 현역에 계신 분들한테 어떤 배려를 해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군인으로서의 모습을 계속 강요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 분은 누군가 그 자리에서 다쳐야 되고, 또 남을 위해서 희생당한 우린데, 그럼 해군에서는 그만큼 우리를 배려해주고 웬만큼 이 사람이 군 생활을 하는 데 무리는 없는지, 체크는 충분히 해줄 수 있다고 저는 보거든요. 그 분은 어디다 말 할 데는 없고. 또 내 맘 아는 다른 해군 같이 근무하시는 분들은 이해를 하실 수가 없고, 결국은 몇 년 만에 이야기 하시는 게 손목을 보여주면서 말씀하는데, 내가 뭘 해드릴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되게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해줄 수 있는 건 현역들이 지금도 그 아픈 상처를 가슴에 품고 근무하고 있다는 건 좀 알리는 것.

앵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나라를 지키고 있다 이걸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전준영
그래서 저는 정말 해군에서 좀 그 부분은 배려해주시고 진짜 심각성에 대해 많이 인지를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앵커
그런데 사건 발생한지 오래됐잖아요. 그동안 어떤 조치를 받았었는지? 제가 듣기로는 말씀하신 분 외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호소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사례를 하나 말씀해주는데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분이 많아요,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가장 힘든 부분은 어떤 걸까요?

전준영
배 타신 분들은 폐쇄 공포증, 이야기하는데 방독면 훈련하는데도 쓰자마자 바로 벗게 되고 격실 안으로, 실내에 밀폐된 공간 안에 들어 갔을 때에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계속 외부 갑판 위에서 호흡을 자주 하게 되고.

앵커
그래도 군 생활이 가능한가요?

전준영
제가 봤을 때 가능한 게 아니에요. 그 분 같은 경우는 배 생활을 한다는 자체가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앵커
전역자들 중 국가유공자로 지정된 분은 열두 명이라고 들었거든요. 그럼 국가유공자 포함해 나오신 분들은 어떤 치료비 혜택이라든지 어떤 배려를 받는지?

전준영
일단 민간인 신분은 서른 네 분, 58명에서 스물 네 분은 현역이고 서른 네 분은 민간인 신분이고. 혜택은 중요한 게 찾는 과정이 굉장히 힘듭니다. 왜 힘드냐면, 보훈처든 국방부든 누군가 나서서 안내를 해주셨어야 해요. 11년 동안 이 사태가 왜 일어났는가 생각해보니까. 누구 하나 나서서 안내해주시는 분이 한분도 없었다는 거예요.

앵커
그냥 살아가는 건가요?

전준영
그렇죠. 본인이 찾아야 된다는 거예요.

앵커
본인이 해야 됩니까?

전준영
본인이 해야 하고. 여러 가지 혜택은 분명히 있긴 있어요.그런데 그걸 몰라서 저희가 찾지 못했던 것 뿐이지. 저희가 몰랐을 때는 누군가 나서서 군이든 보훈처든 해군이든 이런 이런 혜택이 있으니까 신청하시고, 거기에 대해 혜택을 받으시면 됩니다, 누군가 한분이 와서 안내만 해줬더라면 힘들더라도 본인이 찾아서 할 텐데, 그런 혜택조차도 우리는 있는 줄 몰랐어요.

앵커
아 몰라서?

전준영
네, 몰랐어요. 그냥 흔히 남들 생각하는 국가유공자 그렇게 생각했지 거기에 별개로 여러가지 혜택, 다쳤을 때 (치료)받을 수 있는 기관이나 그런 내용 자체가 정보가 없으니 가만히 , 정보가 없으니 가만히 있는 거에요. 그리고 아플때 진짜 심각할 때 병원 한번 가는거고. 병원비를 누가 도와주고 안도 와주고 절차 내지 내용을 아무도 모르니까 문제가 심각했던 것 같아요.


앵커
어떻게 보면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오신분이기때문에 추스리가 굉장히 어려운데 그것도 본인이 알아서 해야한다는 말씀이시죠?

전준영
그렇죠. 국가가 입증하고 국가가 찾아서 도와줘야하는데 개인이 아픈걸 개인이 찾아야하는 상황인거죠. 그걸 바꾸지 않은 이상 제2의 천안함, 제3의 천안함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후배들도 저희와 똑같은 상황에 처할게 뻔합니다.

앵커
굉장히 국가적 관심이 많았던 사건이기 때문에 그 정도일줄 몰랐거든요.

전준영
그나마 지금 우리가 관심을 받으니까 이정도라도 받고 있는거지, 군에서 정말 작은 사건사고를 경험하시고 억울하게 다치신 분들은 아예 그걸 찾을수가 없어요. 그걸 물어볼 데도 없고.

앵커
천안함 장병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군 생활 자체가, 좀 그런 부분이 아쉽다는 거죠.

전준영
그렇죠. 그런 부분은 많이 고쳐야. 그래야지 군에 간 걸 후회 안하고. 잘 될 때는 우리 아들, 다칠 때는 너희 아들 이런 소리가 안 나와야하는 거거든요.

앵커
보훈처 같은 경우는 국가유공자로 모두 지정할 수 없다는거에요. 기준이 있으니까. 그럼 준영씨 입장에선, 생존 장병들 입장에서는 증상이 있는 분들은 모두 유공자로 지정되어야한다고 보시는건가요?

전준영
일단은 천안함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 아는 사건이고 북한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이런 사건 같은 경우는 굳이 저희가 해명하고 법적으로 찾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기준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

전준영
그렇죠. 작은 사건은 본인이 정확하게 기준을 따져서 제출해야 하지만 이건 국가 차원에서 도와줄 부분이 많다고 생각이 드는데 그런게 젤 아쉬운거죠.

앵커
혹시 자비로 치료비를 충당하는 사례도?

전준영
많이 있죠. 음, 제 사례로 하는 게 제일 맞을 것 같아요. 저는 개인 병원 다니곤 있지만 사실 보훈 병원 다녀도 되거든요. 그런데 보훈 병원에 대한 신뢰성이 많이 주위에서 듣던 부분도 있고 외상후 스트레스는 상담이다 보니까 그 병원 가서도 보면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주치의 분이 저랑 코드가 안 맞으면 상담할 수가 없어요.

앵커
좀 더 나랑 맞는 주치의 만나고 싶다?

전준영
그렇죠 병원 쇼핑이라 해서 정신과를 여러군데 다 다녀봤거든요. 그럼 누가 저와 코드가 맞고, 제 얘기를 잘 들어주시고 찾고 찾다가 지금 선생님을 만났어요. 다행히 지금 선생님 군위관 출신이라 이해도가 있어서 말씀할때마다 어느 정도 이해하고 많이 들어주시죠.

앵커
저희가 지금 봤을때는 밝아보이시는데 어떨 때 내가 심적 고통을 받는다고 느끼는지?

전준영
그게 갑자기 와요. 갑자기 온다는 게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심장이 터질것 같고 제 몸이 그때로 돌아가고 그렇게 쭉 다시 한번 사건 현장을 생각하고 결국엔 죽은 분들을 생각하게 되죠. 내가 지금 이런 고민도 사치고 가정을 꾸리는 것도 이분들한테 진짜로 간절했던 삶인데 나는 너무 많은걸 누리고 살고 있지 않나 생각도 들고.

앵커
아휴 질문 드리는 제가 죄송하네요. 사실 오늘 이렇게 상처가 심한, 어떻게 보면 어제같은 것도 중요하지만 구체적 지원이 마련되어야할것같은데 가장 원하는건 뭘까요? 생존자들 입장에서 가장 원하는 것이?

전준영
국가가 입장해주고 이 분들이 왜 국가유공자 혜택을 받아야하는지 국가유공자로 지정되는게 바라는 점 중 하나죠. 본인이 지금 아픈 와중에도 증거도 남겨야하고 서류도 직접 가서 작성해야하고 과정에서 되게 지친 부분이 많고 첨에 말씀드린것처럼 안내가 없으니까 서로 물어물어서 어떤 서류를 챙겨서 가야하는지 저희들끼리 계속 공유하고 있다보니까 이분은 당연히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에 국가에서 먼저 도와주시면 저희는 그게 젤 원하는 부분 중 하나죠.

앵커
이게 좀 포괄적 질문인데 가장 아픈 질문이라 마지막으로 돌렸습니다. 11년이 오는 동안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사실 어떤 진보 보수 할것없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이번 행사도 물론 뜻이 깊었지만 정치적 중요시기여서 더 강조됐다는 시각도 있는데 포괄적 시각 궁금한데요.

전준영
항상 이 맘때쯤이면 천안함은 정쟁의 대상이 되버려요. 그냥 그 안에 있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아요, 이 천안함 배 하나만 생각하지 천안함을 기억하는 건 국민 누구나 하실 수 있는 권리고 안하시고 싶다면 안하셔도되는데 인터넷상 뉴스를 보면 다들 자기 유리한 쪽으로 끌고서 행동하시는 거 보면 그런 언론 보도, 정치인들 행동 봤을때 과연 이분들이 진심으로 천안함 장병을 추모하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좀 더 뉴스에 나와서 그렇게 끌고가는지 한번쯤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항상 어디가도 이건 진보보수 초당적 문제고 누구나 다 감사하고 추모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이제 때 되면 어떤 뉴스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액션도 취하고, 어저께도 국민의힘에서 대전 현충원에 오신 걸 봤는데 개인적으로 화난 부분이 뭐냐면 생존자 유족분들이 봤을때 언론사들이 그렇게 그닥 없더라고요. 그런데 국회의원이 현충원 방문하니까 언론사가 가득차있더라고요.

앵커
아, 저희도 반성하겠습니다.

정준영
네, 그것도 사실 언론의 문제기도 해요. 너무 언론이 정치쪽으로만 바라보고 이분들에 대해서 집중하고 배려해주셔야하는데 그거보고서 우리가 정치인보다 못한게 뭐지? 이분들은 그래봤자 선출직이고 우리가 뽑아준 사람인데? 그런데 우리는 남을 위해 희생했는데?

앵커
언론 얘기해서 저도 생각하는게 뉴스 앵커를 하면서 가장 가슴아팠던 사건이 천안함 사건입니다. 몇 년 지나고 준영씨를 처음 만난게 같은 방송국 앞에서 음모론에 항의하시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봤었어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조금 더 카메라 앞에 나설만큼 용기가 생기신 것 같아서 제 개인적으로는 조금 나아지셨구나 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정준영
네.

앵커
자, 천안함 생존 장병을 대표해서 전준영씨와 함께 인터뷰 진행해봤습니다. 우리 모두 잊지말아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뉴스를 보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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