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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깊은뉴스]“합의해 달라”생떼에 또 운다
2017-06-22 19:59 사회

가해자들이 제발 합의를 해 달라며 생떼를 쓰게 되면 피해자는 두번 상처를 입게 됩니다.

고등학생 아들이 친구들에게서 차마 말로 하기 힘든 학대를 당했는데, 합의 강요 때문에 고통받는 가족을 김유림 기자가 집중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친구를 앞세운 채 걸어가는 남학생들.

친구집 앞에서 잠시 서성이다 돌아갑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피해자 엄마]
"정말 치욕스러운 그 짓을, 우리 아이가 어떻게 참았고 그걸 당하면서 말하지 않았는지 (제 심정을) 다 말 할 수가 없어요."
40대 여성 박모 씨는 힘들게 고3 아들 이야기를 털어놨습니다.

지난해에 아들이 친구 3명에게 상습적인 폭행과 괴롭힘을 당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친구들은 '장기를 팔아 돈을 구해오라'며 강요하고 납치하다시피 해 감금폭행까지 했습니다.

[김유림 기자]
"이곳이 피해자가 열흘 동안 갇혀 있던 집입니다. 보시다시피 거미줄이 가득 쳐있는데요. 이집은 몇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습니다."

주택가 한쪽 반지하 건물. 밀폐된 구조라 외부의 도움을 요청하기도 힘든 장소입니다.

[ 박차열 / 담당 형사]
"세 명이서 둘러싸서 폭행을 하고. ‘번갈아가면서 1대 1로 싸우자. 그래서 네가 한 번이라도 이기면 집에 보내주겠다.’ ○○에 담배빵을 하는 그런 가혹행위도 있었고."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박차열 / 담당 형사]
"마지막 조사가 다 끝나고 ‘다 끝났다’고 하는데 학생이 저하고 사무실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자는 거예요. 유사강간. 눈물을 글썽이면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동성을 상대로한 성범죄까지 저질렀다는 것.

그렇게 5달을 시달린 뒤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졌습니다.

[피해자 엄마]
"우리 아이는 뭘 하고 싶다거나 세상을 좋게 살고 싶다는 어떤 의욕도 없고. 본인의 신체 부위도 보지도 못하고 트라우마가 생겨서. 거울도 못 보고."

아들 몸의 멍자국을 발견한 엄마의 신고로 가해학생 3명은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가장 죄질이 나빴던 가해학생에겐 폭행과 상해 등 혐의가 무려 10개나 적용됐습니다.

그러나 끝날 듯하던 악몽은 이들이 구속된 이후에도 계속됐습니다.

[피해자 엄마]
"성적인 (폭행)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대문에서 사과한다고 용서해달라고. 여러 명이 와서 그러니까 너무 무서웠어요. 보복을 할 것 같기도 하고."

가해학생들의 부모가 수차례 찾아오고 편지를 보내온 것.

목적은 '합의'였습니다.

"우리 아이가 죽어야 마음이 편하겠냐" "합의서를 받고 위로금을 전하고 싶다."

심지어 "죽이든 살리든 선택들 조용히 기다리겠다"는 부탁인지 협박인지 모를 내용까지 있습니다.

[피해자 엄마]
"어떻게 가해자 쪽에서 저희가 그들의 생명을 쥐고 흔든다고. 그렇게 편지 내용을 쓸 수 있었는지. 저는 그 엄마가 무서웠어요."

그렇다면 왜 이렇게 집요하게 합의를 요구할까.

최근 동거녀를 살행한 뒤 콘크리트로 암매장한 남성은 1심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 받았지만 2심에서 3년으로 줄었습니다.

평소가 왕래가 없던 아버지가 합의를 해줬다는 이유였습니다.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범인들 3명 역시 피해자 측과 합의 한 뒤 2심 재판에서 형량이 크게 줄었습니다

피해자와 합의를 하거나 합의 시도만 해도, 또는 법원 공탁금만 걸어도 감형이 많이 이뤄집니다.

[황수철 / 변호사]
"현재 재판 과정에는 피해자 또는 피해자 가족이 합의서를 제출하기만 하면 기계적으로 양형에 유리하게 반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에게 합의를 강요하면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있지만 사실상 처벌은 쉽지 않습니다.

합의 강요 때문에 2차 피해를 겪으면 경찰에 신변 보호 요청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적인 위험이 없으면 경찰은 대부분 가해자에게 접근 금지를 '권고'하는 수준.

[김영미 / 한국성폭력위기센터 이사]
"합의를 강요하는 행위까지 있다면 별도 처벌 규정이 가능하지만 거기 미치지 않는다면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없습니다."

A군을 괴롭힌 가해자 측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찾아가봤습니다.

[전화 연결음]
"따르르르릉. 전화기가 꺼져있어…"

끝내 당사자들을 만나지 못한 취재진은 변호인을 통해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만 전달받았습니다.

가해 학생 3명의 가족은 재판이 시작되자 피해자에게 합의금 2천만 원을 제시했습니다.

[피해자 엄마]
"심하면 결혼도 못 하고. 그냥 치료 안 받고 평생 잘 넘어가면 모르겠지만, 그걸 누가 알고 그 합의금을 책정할 수 있겠어요."

합의와 용서. 이들에게는 아직까지 멀기만 한 이야기입니다.

채널A뉴스 김유림입니다.

연출 - 김지희 최승희
글, 구성 - 남윤지 이소연
그래픽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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