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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깊은뉴스]‘엉터리 내진설계’ 포항 문제가 아니다
2017-12-01 19:54 뉴스A

포항을 덮친 지진은 우리나라 건물들이 얼마나 지진에 취약한지 보여줬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건물들은 내진설계를 하도록 규정돼 있는데요.

그러나 제대로 계산도 해보지 않고 내진 관련 서류를 제출하는 등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김유림 기자의 '더 깊은 뉴스'입니다.

[리포트]
진앙에서 10km나 떨어져 있지만 필로티 건물의 절반이 지진 피해를 심하게 본 포항의 원룸촌.

[주민]
"(건축 업자가 건물을) 지었다가 프리미엄 받고 팔고. 짓고 또 짓고."

지진으로 망가진 필로티 기둥들은 양심불량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지진이 안 났다면, 까맣게 묻혀버렸을 어두운 비밀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부실 시공뿐 아니라 설계의 문제점도 지적합니다.

부서진 건물은 계단 통로가 한 쪽 끝에 있고, 사방이 모두 뚫린 구조입니다.

그러나 계단이 건물 중앙에 위치하는 좌우대칭 구조로 설계하고, 한쪽 면에 시멘트 벽을 세우는 설계가 상식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김홍엽 / 건축구조기술사]
"코어(중심부)가 한쪽에만 몰려 있으니 이쪽은 피해가 덜 심하고 저쪽은 균열이 많이 생겼거든요."

이번 지진에도 끄떡없었던 인근의 5층 건물들은 계단이 중앙에 있거나 시멘트 벽면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사는 어떻게 생각할까.

[건축사 사무소 관계자]
"인터뷰를 할 의사가 없다, 그렇게 말씀하셔서. 예민한 사항이라 그런지, 인터뷰는 조금 힘들 것 같다고."

이런 문제는 포항에만 있을까.

서울에 있는 5층 규모 다세대주택입니다. 이 건물은 주변 건물들과 층과 면적이 다릅니다. 그런데 구청에 제출된 구조 안전 확인서는 주변 건물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습니다.

[이호찬 /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부회장]
"40억 인구가 다 얼굴이 다르듯이 건물은 다 다릅니다. 건물의 특성, 골조가 가진 강성이나 특성에 따라 건물의 흔들림이 다르다고 보면 됩니다."

내진 설계의 필수 서류인 구조안전 확인서는 실제 계산조차 하지 않고 임의 제출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김모 씨 / 해당건물 건축사]
"건축구조기술사에게 계산서를 받기 전에 (구조안전확인서를) 구청에 낸단말이여. 행정편의상."

심지어 구조 안전 확인서를 빈칸 투성이로 제출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이런 엉터리 서류를 내도 건축 허가를 받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시청 건축과 관계자]
"건축사들이 책임질 의무가 있기 때문에. 저희는 서류 제출 여부만 확인하는 거지. 공무원들이 (내진설계) 계산 할 줄 모르지 않습니까."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하반기에 착공한 건축물 580곳을 무작위로 조사해보니, 절반이 넘는 316곳이 내진 설계 오류 등 때문에 1차 부적합 판정을 받았습니다.

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질까.

현재 내진 전문가인 건축구조기술사는 6층 이상 건물의 설계에만 참여하고, 2~5층 사이 건축물의 내진설계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습니다.

5층 이하 건물의 정확한 내진 설계를 하려면 건축구조기술사들에게 외주를 줘야 하지만, 그 비용을 아끼려는 겁니다.

[A씨 / 건축사]
"돈을 위해서 짓는 집이고 상업적인 집이잖아. (건축비) 500만 원 전후 받으면 (내진설계) 외주비가 나가잖아요. 뭐 남습니까."

[B씨 / 건축사]
"최소 설계비, 최소 공사비로 지으니까. 비용 지불에 대한 합의가 있지 않고서는 건축사들도 (내진설계 보강이) 안 된다."

지금 포항에서는 지진으로 부서진 건물들에 대한 보수 공사가 한창이지만, 이들은 모두 구조 진단없는 날림 공사입니다.

금간 벽 위에 시멘트를 덧붙이거나 외벽을 덧대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피해 건물 주인]
"지금은 우리가 임시로 싸놔서 안 보이죠. 개인적으로 하라고 하는데 보수가 되겠어요?"

5층짜리 원룸 건물 한 채의 내진설계 비용은 2백에서 3백만 원 수준.

지금 포항에선 이 돈을 아끼려다, 수십배 비싼 '외양간 고치기'를 하고 있습니다.

[김성호 /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부회장]
"기둥에 이렇게 균열이 가서 만약 큰 지진이 다시 오게 되면 건물이 붕괴될 수도 있거든요. 얇은 강관으로 받쳐서는 하나마나한 가설 지지가 되고."

채널A뉴스 김유림입니다.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연출 김지희
글구성 지한결 이소연
그래픽 김민수 양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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