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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깊은뉴스]무고, 되돌릴 길 없는 ‘인격 살인’
2017-12-15 19:51 사회

죄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무고로 인한 피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오랜 분쟁 끝에 무죄가 밝혀지더라도 당사자의 삷은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상태인데요.

'인격 살인'이나 다름 없는 무고의 심각한 실태, 최주현 기자의 더깊은뉴습니다.

[리포트]
늦은 밤 편의점으로 향하는 50대 남성.

매일 밤 이곳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박철 / 무고 피해자]
"올해 55살, 박철입니다. 8년 반 전에 귀농을 준비하다가 여의치 않은 일이 생겨서 밤마다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

박씨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09년 6월 27일 밤.

박씨는 아내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차를 막아선 경찰이 음주단속을 실시하면서 실랑이가 시작됐습니다.

[박철 / 무고 피해자]
"경찰관의 진술은 '박철 씨가 자기 팔을 확 잡아서 비튼 것 같다' 내가 자기를 공격해서 자기를 땅바닥에 넘어뜨렸다고 쓴 겁니다."

당시 검찰이 제출한 공소장.

박 씨가 팔을 잡아 비틀어 경찰을 바닥에 넘어뜨렸고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내용입니다.

경찰이 촬영한 영상에는 오른쪽 팔이 꺾인 경찰이 쓰러질 뻔한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경찰의 진술을 근거로 재판에 넘겨진 박씨는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남편의 결백을 증언한 아내까지 위증죄가 적용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아내의 위증죄 재판에 참석한 박씨는 폭행 혐의를 다시 부인했다가 역시 위증죄로 5백만 원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박준영 / 박철 씨 법률대리인]
"어찌됐든 기소는 수사기관이 하지않습니까. 저희는 수사기관을 공격 대상으로 하고 있었고, 쉽지 않은 싸움이었죠."

그사이 박 씨는 공사현장을 떠돌았고, 아내는 26년간 몸 담았던 교직에서 물러나 공장을 전전했습니다.

[박철 / 무고 피해자]
"안정적인 직장을 가질 수 있나요. 일용직을 해야만 재판에 오라는 날 가고, 가족끼리 원망도 하게 됩니다."

위증 재판 항소심을 하던 박씨에게 2015년에 반전의 계기가 찾아왔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영상을 정밀 분석한 결과 박 씨가 경찰의 팔을 꺾지 않은 걸로 판정난 겁니다.

박씨는 공무 집행 방해 사건에 대해 항소했고 결국 지난달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8년 4개월 만에 밝혀낸 결백.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을 잃은 뒤였습니다.

[박철 / 무고 피해자]
"동네 사람들이 다 범법자로 보는데 허망하고 허탈할 거죠. …치밀어 오르는 분노. 그걸로 세월을 8~9년을 보냈다는 게 슬퍼요."

[최주현 기자]
"속일 무와 고할 고가 합쳐진 단어 '무고'. 쉽게 말해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속여 고소한다는 겁니다. 무고는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는 잔혹한 범죄지만 무고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어둠 속에서 말 없이 만화만 그리는 웹툰 작가 이자혜 씨.

[현장음]
"작가님 불좀 켜주실 수 있을까요? 네"

이씨의 고통은 1년 전 시작됐습니다.

[이자혜 / 웹툰 작가]
"자살하라거나 자수하라거나 몇 천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저를 공격하니까…"

자신의 은밀한 사생활을 웹툰 소재로 활용했다며 지인에게 명예훼손 소송을 당한 겁니다.

소송 직후 출판사들의 작품 계약은 모두 취소됐습니다.

[이자혜 / 웹툰 작가]
"폭로문 올라온 다음 날 출판이 모두 해지됐고, 이런 식으로 불미스럽게 계약관계가 끝날 줄은 몰랐어요."

수사 결과 증거 부족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억울한 마음에 상대방을 무고죄로 고소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고심 끝에 포기했습니다.

[이자혜 / 웹툰 작가]
"무고죄로 고소하는 게 거의 의미가 없다는데, 듣고 절망했어요, 저는. 피해를 이렇게 입었는데 어떻게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더라고요."

무고죄는 상대방이 허위라는 것을 알고도 신고한 경우에만 성립됩니다.

정말 혐의가 있는줄 알고 신고했다고 주장하면 처벌이 쉽지 않습니다.

무고를 당했다며 상대방을 고소하는 건수는 해마다 9천 건 안팎에 달합니다.

하지만 재판에 넘겨지는 경우는 그중 20% 남짓에 불과합니다.

실제 무고로 유죄판결을 받더라도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끝납니다.

[승재현 /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정확한 무고인지가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소과정에서 무고가 걸러지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수사기관에) 많은 인력과 예산 확보를 통해……"

사회적 인격 살인이나 다름 없는 무고.

[현장음]
"사람들은 아직도 저를 가해자라고 믿고 있을 텐데 도대체 제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정말 궁금하고 복수할 수도 없고…"

오랜 법적다툼끝에 억울함이 밝혀진다해도 피해자들의 망가진 인생을 되돌릴 방법은 없습니다.

채널A 뉴스 최주현입니다

최주현 (choigo@donga.com)
연출 이민경
글·구성 전다정 장윤경
그래픽 김민수 양다은
영상취재 박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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