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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이길용, 81년 만의 해후
2017-08-25 19:57 문화

여기 두 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81년 전인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으로 금메달을 딴 손기정입니다.

그런데 한 쪽엔 가슴의 일장기가 선명하지만, 다른 쪽에는 흐릿하게 지워져 있습니다.

81년전 8월25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그 유명한 일장기 말소사건이 됐던 그 사진입니다.

이 사건을 주도했던 것은 동아일보 체육부의 이길용 기자였습니다.

오늘 이길용 선생의 흉상이 세워졌습니다.

서울 만리동 손기정 기념관 안쪽 뜰입니다.

이현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과 함께 나란히 시상대에 오른 3위 남승룡.

생전에 그는 손기정의 금메달보다 일장기를 가릴 수 있었던 묘목이 더 부러웠다고 회고했습니다.

[이현수 기자]
손기정이 양손으로 꼭 잡았던 묘목은 무럭무럭 자라 이렇게 큰 참나무가 됐습니다.

두 선수가 그렇게도 가리고 싶었던 일장기를 신문에서 지웠던 사람이 있습니다.

시상대에 선 손기정과 남승룡의 사진 속 일장기를 지운 동아일보 이길용 기자의 흉상이 오늘 이곳 손기정 기념공원에 세워집니다.

3.1운동 소식을 듣고 일본 유학중 귀국한 이길용은 임시정부의 기밀문서를 운송하다 들켜 2년 넘게 옥살이를 했습니다.

[이태영 / 이길용 아들]
"동아일보와의 인연은 송진우 선생님과 관련이 있습니다. 옥고를 같이 치르셨어요. '자네같은 사람이 필요하다'해서 신문기자가 되셨고… ."

일장기 말소는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지만, 사건을 주도했던 이길용은 곧바로 해직된 뒤 투옥됐습니다.

동아일보도 보도 이틀 뒤부터 무기정간을 당하는 시련을 겪습니다.

[이태영 / 이길용 기자 아들]
"광복 이후 고인이 쓴 글을 보니까 일장기 말소는 누구 지시도 아니며 기자들이 우러나와서 한 것이다."

광복 뒤 복직했던 이길용은 6.25 전쟁 당시 성북동 자택 앞에서 납북된 뒤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이태영 / 이길용 기자 아들]
"민족을 위해 죄진것이 없는데 왜 내가 피하겠느냐 버티시다가 개울가 다리 위 근처에서 북쪽 내무서원들에 의해 납치되셨습니다."

흉상의 모습으로 81년 만에 다시 만난 손기정과 이길용.

[이종세 /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않지만 체육언론인들의 오랜 숙원이 풀려 그 기쁨은 크기만합니다."

흉상 제막식에서 아들 이태영 씨는 동아일보 창간 당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사기를 기증했습니다.

이 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체육기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태영 / 이길용 기자 아들]
"대쪽같은 불같은 정의감을 불태우셨던 저희 언론계 대선배셨습니다."

채널A뉴스 이현수입니다.

이현수 기자 soon@donga.com
영상취재 : 김기열 이준희 박찬기
영상편집 : 조성빈
그래픽: 안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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