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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깊은뉴스]흰 옷 걸친 전공의 폭력…‘검은 대물림’
2017-11-06 20:00 뉴스A

병원에서 환자의 생명을 돌봐야할 전공의들이 폭행과 폭언에 시달린다는 소식이 끊이질 않습니다.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들 사이에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대를 이어 내려가며 끊이지 않는 폭력의 사슬,

김유림 기자의 더깊은뉴습니다.

[리포트]

입원실 복도 한 쪽의 작은 방.

2층 침대 두개와 조그만 TV, 컵 라면 몇개가 음식의 전부입니다.

침대에선 누군가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습니다.

대학 병원의 인턴과, 레지던트, 즉 전공의들이 생활하는 공간입니다.

"제 2의 집처럼. 아, 좀 부끄러운데요."

그러나, 이곳에선 먹고자는 일만 하는 게 아닙니다.

전북대 병원 정형외과 전공의 김모 씨가 몇달 전에 찍어둔 본인의 몸입니다.

잔인한 폭행의 흔적들이 역력합니다.

[김 씨 / 前 전북대병원 전공의]
"발로 날아차기 하고, 로우킥 때리고 뺨 맞고..."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교수와 전공의 선배였습니다.

[김 씨 / 前 전북대병원 전공의]
"'ㄷ'자 테이블이 있어요. 저를 가운데 엎드려뻗쳐시키고 각 연차별로 앉아요. 공개적으로 뭐, 저는 바보가 되는 거죠."

[김 씨 / 前 전북대병원 전공의]
"벨소리가 마음에 안 든다 그런 걸로 해서 때린 적도 있고, 휴대폰 검사를 맡고 사진이나 사생활 검사까지 다."

그러나 병원 측 설명은 달랐습니다.

[전북대병원 관계자]
"한국 문화의 특수성이기도 한데. 정형외과 특수성이 있기는 한 것 같아요." (문제 제기가 과도하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거에 대해서 저는 말 못 하겠어요."

2년 전 국정 감사에서 한 여성 인턴은 폭행당한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폭행 피해 인턴(2015년 국정감사)]
"보건복지부장관님께서는 저처럼 병원 폭력 때문에 의사로서의 커리어를 잃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주셨으면…"

하지만, 집행 유예를 선고받은 가해자는 전문의 자격을 땄고, 피해 인턴은 학교를 떠나야했습니다.

[안치현 /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
"피해 사실이 알려진 뒤 오히려 피해자들이 더는 논란을 원치 않는다거나 중간에 전공의를 그만 두고."

정당한 문제 제기를 신세대 탓으로 돌리기까지 했습니다.

[녹취: 흉부외과 전문의]
"폭력, 폭언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는데, 세대가 내려오면서 고생을 좀 덜 했던 세대는 인내하는 것도 부족하다."

전문의가 되려면 예과 2년, 본과 4년 과정을 마친 뒤, 전공의 과정을 5년 넘게 거쳐야 합니다.

[김유림 기자]
"전공의를 거쳐 전문의가 되어도 폭력의 사슬은 이어집니다.

최근 이 대학병원의 전문의는 수술 도중 교수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인터뷰: 정 씨 / 前 수도권 ○○ 대학병원 전문의]
"교수님이 저의 등을 주먹으로 권투 하듯 (때렸어요.)" 손에 바늘을 쥐고 있는데 잘못해서 환자한테 문제가 생기면 더 안 되기 때문에 맞고서도 아무 소리 못 하고."

이후 또 다른 폭행 증언이 이어졌고 병원 측은 교수에게 경고조치를 했습니다.

이런 악습은 오래 전부터 대물림돼왔습니다.

[녹취: 노환규 / 전 대한의사협회장]
"2년 선배가 수업 시간 도중에 교수의 양해를 얻고 수업 시간 도중에 몽둥이를 들고 구타를 하는 거예요. 몇 십 년 전 이야기이긴 하지만, 꽤 오랫동안 내려왔던 거예요."

전북대 병원 사건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전공의 A 씨.

[녹취: A씨 / 전북대병원 폭력 가해 전공의]
"네 말 아무도 안 믿어, 너 거짓말쟁이야 XX하지마."

그런데 A씨도 불과 2년 전엔 폭력의 두려움에 떨던 피해자였습니다.

당시 A씨가 쓴 검찰 조서에는 선배들을 향한 울분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그렇게도 미워했던 선배의 한 사람이 돼버렸습니다.

지난 해 전공의 보호법의 시행을 반대한 사람들도 전공의 자신들이었습니다.

[송명제 / 응급의학과 전문의]
"전공의법이 생기고 나서 가장 반대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요? 우리 전공의 내부였어요. 전공의든 전문의든 상급 연차가 후배를 착취하는 구조가 있는 거예요. 맞은 사람이 시니어가 되면 또 때리고."

전공의 10명 중 2명은 지금도 폭행을 경험하고 있고, 7명은 욕설과 폭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정부는 폭행에 연루된 전문의의 의사자격을 일정기간 박탈하는 대책을 내놨지만 근본적인 방안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
"단순히 동료 의료진을 폭행했다고 해서 형사처벌 외에 의사 면허에 대한 부분을 규제하기는 현재로서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맞아야 제대로 배운다는 잘못된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은밀히 자행되는 백색 폭력의 사슬은 끊을 수 없습니다.

채널 A 뉴스 김유림입니다.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연출 김지희
글구성 지한결 이소연
그래픽 김민수 양다은
영상제공: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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